자비의 윤리와 보살핌의 윤리의 비교 윤리학적 고찰 양 윤리 체계의 유사성과 보살핌의 윤리의 한계에 관한 일고찰 安 玉 善 (안 옥선) : 조선대, 전남대 철학과 강사. 주요 논문: [초기불교와 선진유교에 있어서 윤리문제], [초기불교와 선진유교에 있어서 덕의 객관성 문제], [화이트헤드의 종교와 신개념에 대한 고찰] _이 논문은 1996년도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설 성철선사상연구원의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        목     차           | (1/4) | (2/4) | (3/4) | (4/4) |    Ⅰ. 머리말 ◁ 첫 페이지 (1/4) ↙ No. 1    Ⅱ. 자비의 윤리     1. 자비의 정의     2. 자비의 윤리의 이론적 토대         3. 자비의 윤리의 전개    마음의 해탈 - 1) 2) 3)단계               3_3) 중간>자신에 대한 자비 혹은... ◀ 현재 페이지 (2/4) ↙ No. 2    Ⅲ. 보살핌의 윤리     1. 보살핌의 정의   중간>관심의 전이         2. 보살핌의 윤리의 이론적 토대         3. 보살핌의 윤리의 전개               Ⅲ_3 중간>노딩스는 길리간과 다른... ◁ 다음 페이지 (3/4) ↙ No. 3    Ⅳ. 자비의 윤리와 보살핌의 윤리의 유사성     1. 간과할 수 없는 상이성         2. 자비의 윤리와 보살핌의 윤리의 유사성   _1);  2);  3);  4);  5)보살핌의 윤리는 희생을...    Ⅴ. 보살핌의 윤리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자비의 윤리         1. 보살핌의 윤리의 한계               1_중간>첫번째 한계는... ◁ 네번째 페이지 (4/4) ↙ No. 4         2. 보살핌의 윤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자비의 윤리    VI. 맺음말: 이상적인 윤리          참고 문헌      앞장(1/4) 계속 ↙   자신에 대한 자비 혹은 자신을 보살피는 태도는 본성에 가까운 것으로서 점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타인과 다른 존재들을 자비의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의도적인 노력을 전제한다.   자비의 대상을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들에게로 확대하는 것은 노력에 의한 자비의 습관적 체화 과정이다. 자비를 습관적으로 닦아 체화함으로써 사람은 자신과 다른 존재들의 보존과 복지를 함께 추구하는 행동을 표출한다.   즉 자비의 습관적 체화에 의해 자기 중심적 사고와 행동 패턴을 자신과 타인 양방 중심적 사고와 행동 패턴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비를 닦아 체화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   그것은 다양한 명상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비의 마음의 깨달음의 측면에 대한 고찰에서 논의했던 사마타와 비파사나 수행은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에 있어서도 중요하지만 자비의 습관적 체화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자비의 습관적 체화는 외부의 규율에 의해 자신을 반복적으로 제어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통찰적 정신 집중으로서의 비파사나와 명상적 정신 집중인 사마타 수행으로써 자신의 성품을 점진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신적 평정 상태를 목적으로 하는 사마타와 현상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목적으로 하는 비파사나 수행의 결과로서 성품의 평정 상태(sankh raupekkh )를 얻게 되는데, 이때의 핵심 내용이 바로 자비의 습관적 체화라고 생각된다.   자비의 습관적 체화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비의 행동을 드러낼 수 있는 자비로운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자비를 습관적으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주의 집중적 명상(sati, 念, mindfulness)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비의 습관적 체화를 위해서는 네 가지의 주의 집중적 명상(사념처) 중에서도 감각 혹은 느낌(vedan )과 마음(citta)에 대한 주의 집중이 중요하다.   자신의 느낌과 마음에 주의 집중함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매순간 자비의 상태에 머무르도록 하여 궁극적으로는 자비로운 마음을 길러 낼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출가 수행자에게 주의 집중의 한 주제로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는 수행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사방으로 자비를 확산하는 것을 주제로 한 [숫타니 파타]의 메타 숫타에서도 주의 집중을 통한 추상적 차원에서의 자비의 실천을 말하고 있다.   추상적 차원에서의 자비의 실천은 의식 속에서 타인과 여타의 존재들과 관념적으로 자비의 관계를 맺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념 속에서 맺어진 관계가 현실 속에서 사실화될 때 자비의 윤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적 차원에서의 자비의 실천은 이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 관계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기 이전의 예비 단계로서도 중요하다. 주의 집중은 추상적 단계에서 자비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그 강도를 높여주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자비를 체화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은 주의 집중이라는 명상적 수행을 통해 자비로운 태도를 내재화하고 행동을 통해서 내재화된 자비로운 태도를 외화한다. 따라서 자비는 행동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 외화되기도 하지만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는 내재적인 것이기도 하다.   사마타와 비파사나 그리고 주의 집중적 명상이 자비의 습관적 체화, 그리고 자비의 습관적 체화 상태를 갖춘 성품의 평정 상태에 기여한다는 것은, 불교의 명상 수행의 목표가 신비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며 일신의 해탈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초기 불교 경전에서 자주 보이는, 조용한 곳에 앉아 명상하라는 붓다의 권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홀로 조용한 곳에 앉아 명상하는 것도 자신에 대한 복지나 깨달음과 함께 다른 존재들에 대한 복지나 깨달음을 동시에 고려하는 자비의 습관적 체화를 위한 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명상을 생활의 핵으로 하는 '숲속에서 홀로 머무르는 삶'도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된다. 수행자는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위한 행복한 생활과 사람들을 위한 연민의 마음(anukamp mano)을 갖는 생활을 이끌어 내야 한다.          Ⅲ. 보살핌의 윤리                 3-1. 보살핌(care)의 정의   길리간과 노딩스는 보살핌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설명한다. 길리간에게 보살핌은 자신과 타인의 복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사람은 일차적으로는 자신만을 고려하다가 타인과의 관계성을 의식한 다음부터는 차츰 타인도 고려의 대상에 포함시킨다.   타인을 고려하는 데 있어서는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인에 대한 책임감의 인식은 타인에 대한 보살핌의 윤리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는 타인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자각과 함께 사라진다.   자신의 복지와 타인의 복지가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권리와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조화시켜 갈등을 해소한다. 자신에 대한 권리와 타인에 대한 책임감으로서의 보살핌은 결국 권리와 책임감의 화합으로서의 보살핌이라는 형태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길리간에게 있어서 보살핌이란 나 자신에 대한 권리, 타인에 대한 책임감, 이 두 가지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길리간의 보살핌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주목되는 것은 그녀가 자신과 타인에게 보살핌을 적용할 때 형평성(equity)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보살핌은 모든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평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칸트와 롤즈의 이론은 모든 사람의 권리에 있어서 평등성(equality)을 전제로 하고 있는 데 비해, 보살핌의 윤리는 개인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보살핌의 양과 질에 차이를 두는 형평성을 전제로 한다.   개인과 상황의 차이를 무시한 절대적 평등의 개념은 채택되지 않는다. '길리간'이 보살핌을 권리, 책임감, 형평성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여 보살핌의 전개 양상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비하여 '노딩스'는 보살핌의 내적 성격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딩스가 보살핌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꼽고 있는 것은 보살핌을 받는 사람과 함께 느끼는 감정인 '함께 느낌(feeling with)'이다. 보살피는 자는 보살핌의 상황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타인과 함께 보고 타인과 함께 느끼며 자기 자신이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보살피는 자는 '함께 느낌'을 통해 타인을 수용함으로써 타인의 상황을 자기 상황이 되게 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되게 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갓난아이가 울 때 갓난아이의 상황에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이의 우는 것 자체를 수용하여 일차적으로 아이의 느낌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자신을 갓난아이에게 투사함으로써 갓난아이가 되어 보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이의 정서를 자신 속으로 가져와 자신이 갓난아이가 되어 보는 것이다.   '함께 느낌'은 칸트의 도덕 이론에 전제된 투사(projection)의 개념을 비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고안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느낌'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 즉 타인의 입장 속에 자신을 대입하여 타인의 객관적인 정보를 분석하여 그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추론해 내는 투사법과 대조된다.   투사법이 상대방의 상황을 분석하고 객관화하여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기 위한 것이라면 '함께 느낌'은 상대방을 자신 속에 받아들이는 수용이다. '투사'가 이성적인 이해나 상황 판단을 강조한다면, '함께 느낌'은 타자의 정서를 수용함으로써 타자 끌어안기를 강조한다.   투사에 의한 문제 구성 그리고 해결의 방법은 보다 수직적이고 일방적이고 해석적임에 비해 수용에 의한 '함께 느낌'의 방법은 보다 수평적이고 양방적이며 몰입적이고 소통적이다.   그리고 전자가 문제 파악과 해결 그리고 적용 규칙의 도출을 중시하는 반면, 후자는 상황에 공감하고 대상 자체가 갖는 상황을 안고 받아들여 대상이 갖는 심리적 느낌에 공감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함께 느낌'은 '몰입(engrossment)'과 동일한 것이다. '함께 느낀다'는 것은 타인을 나 자신의 실재로서 여기는 것 혹은 타인을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타인의 수용이나 타인에의 몰입이다.   노딩스는 보살핌의 윤리에 있어 몰입의 시발점으로서 충동 혹은 감정의 촉발을 전제한다. 노딩스는 충동이나 감정의 촉발을 자연적 충동이라고 한다. 그녀는 충동이나 감정의 촉발이 전제된 몰입은 높은 강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살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노딩스는 보살핌이 실천될 때 어떻게 몰입이 기능하는지 혹은 자신이 어떠한 의미로 몰입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몰입은 이성적 몰입이라기보다는 감성적 측면에의 몰입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보살핌의 뿌리를 정서적 측면에 심어 두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몰입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는 노딩스의 보살핌의 이론의 핵심 개념인 '관심의 전이(displacement of interest)' 그리고 '타자의 현실을 감지하는 것(apprehending the other's reality)'과 관련시켜 이해할 때 가능할 것이다.   '관심의 전이'란 나 자신의 현실로부터 타인의 현실로 관심을 전이시키는 것으로서 타인의 현실을 감지하는 것이다. 타인의 현실을 감지한다는 것은 타인이 느끼는 것을 가능한 한 그대로 느끼는 것이며, 타인의 현실을 나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자신이 다른 사람의 현실을 받아들여 그 현실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타인의 현실이 나의 현실이 되어 나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타인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타인의 현실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자신 혹은 자신의 시각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과 타인 혹은 자신의 시각이나 타인의 시각을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보살피는 자는 자신과 타자의 두 개의 관점을 유지하며, 따라서 항상 보살피는 자와 보살핌을 받는 자의 이원성이 전제한다. 타인이 나 자신 속에 수용되어 타인과 자신의 존재가 일원화되는 것 같지만 이는 정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나 자신은 타인을 내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합일시켜 일원적 존재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타인은 항상 구별되어 이원적으로 존재한다.   요컨대 노딩스는 보살핌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타인의 현실의 전적인 수용을 강조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정서적 일원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존재적 일원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노딩스의 '함께 느낌', '몰입', '관심의 전이' 혹은 '타인의 현실을 감지하는 것' 등의 개념 속에 공통적으로 전제되어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관계하는 인격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보살핌의 성립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체적 타인의 존재인데, 이 구체적 타인은 보살핌을 매개로 하여 하나의 구체적 인격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노딩스는 보살핌의 윤리의 초점을 밝히면서 보살핌의 실천에 있어서 구체적 타인의 존재성 혹은 구체적 인격의 존재성을 명시하고 있다.   노딩스는 보살핌의 윤리의 초점은 "다른 사람을 도덕적으로 어떻게 만나느냐"에 있다고 한다.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보살핌의 윤리는 현재의 구체적 인간 관계를 떠나 추상적으로 혹은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구체적 관계 속에서 보살핌의 윤리가 행사된다는 사실은 이 윤리로 하여금 보편적 보살핌이라는 이상을 부정하게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노딩스는 보편적 사랑이 가능하려면 우리가 모든 혹은 많은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 하고 이 관련성 속에서 반응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범위는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로 말미암아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사실상 노딩스는 보편적 사랑의 개념을 환상이라고 하여 명백히 거부한다.   따라서 노딩스에 의하면 한 개인이 모든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인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타인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녀)의 기대와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느끼며,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는가를 인식한 연후에 비로소 보살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핌의 윤리에 포함된 상황의 인식과 타자 수용의 과정 자체 ― 물론 보살핌이 구체적 행동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타자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타자의 수용의 과정도 보살핌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 는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우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으므로 모든 사람을 보살핌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서적 반응을 요구하는 보살핌의 윤리의 성격 때문에 보살핌의 윤리는 보편적 사랑의 개념을 거부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보살핌의 윤리는 인간의 이성적 측면에서 발현되기보다는 인간의 정서적 측면에서 발현되며 그 윤리의 행사에 있어서도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가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도덕에 있어서 정서적 측면을 중요시하지 않는 칸트의 입장과 대립된다.   도덕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의 역할에 대한 칸트의 윤리와 보살핌의 윤리의 차이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전자가 제삼의 관찰자 시각을 이상으로 하고 후자가 이를 비판하는 데서 잘 드러나 있다.   칸트의 제삼의 관찰자 시각에서는 정서적 공감에 의한 상황의 수용보다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며 이성적 사유에 입각한 객관적 판단이 필수적이다.   보살핌의 윤리에서는 정서, 감정 등에 의한 주관적 감응과 대응이 중요한 반면에 이상적 관찰자의 시각에서는 이성에 의한 객관적인 규칙이나 도덕 원리의 추출이 중요하므로 구체적 상황을 추상화하여 탈상황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살핌의 윤리는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이나 원리 추출에 목적을 두지 않으므로 타인을 보살피는 데 있어서 추상화나 탈상황화가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보살핌의 윤리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 사람의 범죄자를 적절하게 처벌하는 것을 고려하는 경우에 어떠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추상화의 방법에 의해 살피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와 희생자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우리의 아이가 그 범죄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방법은 상황을 탈개인화시켜 추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화 혹은 개별화시켜 구체화해 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화해 보는 과정은 자신이 가진 상황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여 가상적 상황을 상상해 보고 이 가상적 상황을 자신의 의문, 재구성적 이야기, 해석 등으로 채워 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보살핌의 윤리학자들에 의하면 도덕 원리를 추출하기 위한 추상화의 과정은 칸트식의 전통적 도덕 이론으로서 여성의 도덕 원리가 아닌 남성의 도덕 원리이다. 이에 반하여 문제의 구체화 혹은 개인화의 방법은 여성의 도덕 원리에 따르는 여성적 접근법이다.   노딩스는 이 두 접근법을 지칭하여 각각 전통적 남성적 접근법과 여성적 접근법이라고 한다. 전자의 방법이 문제 중심의 객관적이고 탈개인적 방법임에 비하여 후자의 방법은 사람 중심의 구체화 혹은 개인화의 방법이다.   노딩스는 추상화하는 방법에 대립되는 구체화의 방법은 보살핌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이며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여성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살핌의 윤리를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이해해 본다면 칸트의 전통적 도덕 이론, 남성적 접근법 혹은 탈개인적 추상화의 방법은 이성 우위의 혹은 이성 중심적 도덕 이론이라고 할 수 있고,   전통적 도덕 이론에 대한 비판 이론으로서의 보살핌의 윤리, 여성적 접근법 혹은 개인화적 구체적 방법은 감성 중심적 도덕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보살핌의 윤리학자들은 도덕의 기원에 대하여 이성을 더 중시하는 칸트의 입장에 비판적이고 감성을 더 중시하는 흄의 입장에 동의한다.   흄은 도덕의 기원을 초감성적이고 이성적인 어떤 원리에서 찾지 않고 정서적인 것 ― 예컨대 정서적 쾌와 불쾌, 정서적 시인과 불인 ― 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흄에 의하면 정서적 쾌와 불쾌,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정서적 시인과 불인은 행위의 주체자가 느끼는 공감(sympathy)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도덕 행위에 있어서 공감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에 의하면 공감은 어떤 행위에 대한 시인과 불인의 원동력으로서 도덕심과 도덕적 행동의 원천인 것이다. 흄이 도덕의 원천을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 감성에서 찾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딩스도 도덕의 원천을 인간의 자연적 혹은 감성적 본성에서 찾고 있다.   그녀는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긍정적 정서를 전제하지 않고는 그 어떤 윤리적 이상도 논의할 수 없다고 본다. 그녀에 의하면 윤리적 이상(ethical ideal)은 두 가지 정서(sentiment)로부터 비롯되는데,   하나는 인간 상호간에 느끼는 자연적인 공감(natural sympathy)이고, 다른 하나는 최고의 보살핌과 다정 다감한 순간들을 유지하거나 다시 불러일으키거나 증진시키려는 갈망(longing)이다.   그녀는 자연적인 보살핌의 감정(natural sentiment)과 다정 다감함(tenderness)을 유지하려는 의도(wil- lingness)가 윤리적 감정(ethical sentiment)보다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노딩스에 의하면 보살핌은 하나의 윤리적 이상이므로 보살핌의 윤리도 이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노딩스는 현재의 타인을 위해 행동하고자 하는 자연적 충동이 우리에게 있으며 이는 선천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 충동은 우리들 각자 속에 잠재해 있으면서 보살핌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킴으로써 점차적으로 발전된다. 따라서 도덕성 혹은 보살핌의 윤리의 근간이 되는 본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노딩스가 감정 혹은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살핌의 윤리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살핌의 윤리에서 이성의 힘(rational power)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타인 속에 몰입시키는 과정 속에서 기능한다.   이것은 마치 흄이 인간의 정서(sentiment)가 도덕의 원천으로서 인간의 도덕적 행동에 있어서 주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성의 역할을 전적으로 무시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흄과 마찬가지로 노딩스도 느낌이나 정서가 보살핌의 윤리를 마음에서 발전시키고 또 행동으로 표출해 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이성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보살핌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살핌의 실천 가능성에 대해 판단하며, 어떠한 방식에 의해 보살핌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이성적 사려와 판단이 요구된다.   그런데 보살핌의 윤리의 실천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일 뿐이다.   이성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도덕 판단과 행위에 있어서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해 온 기존의 윤리 이론들로부터 보살핌의 윤리를 구별짓는 핵심적 측면이다.   노딩스는 윤리에 있어 감성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흄과 입장을 같이할 뿐만 아니라 보살핌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경험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흄과 입장을 같이한다.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보살핌에 대한 기억이 현재의 자신이 보살핌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 자신이 경험했던 보살핌에 대한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 어떤 규칙이나 원리가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칸트의 규칙이나 원리 중심의 도덕과 상반된다.         3-2. 보살핌의 윤리의 이론적 토대   노딩스는 '보살핌의 윤리가 어떠한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느냐'의 문제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 논의를 회피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살핌의 윤리가 어떠한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노딩스의 생각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 모두는 선천적으로 보살피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고 이를 발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인간 존재의 상호 연결성 내지는 의존성이 보살핌의 윤리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1) 인간 모두는 선천적으로 보살피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고 이를 발현시켜야 한다는 점   노딩스에 의하면 인간 모두에게는 현존하는 타인을 위해 행동하려는 충동이 잠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선천적인 것으로서 도덕의 원천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며 생득적인 것이지 이성에 의해 후천적으로 도덕률로서 부여된 것이 아니다.   보살핌은 모든 도덕의 원천으로 자연적인 것이어서 인위적인 도덕적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살핌은 전도덕적 선(premoral good)이다.   인간의 보살피려는 충동이 보살핌의 윤리를 형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면, 보살핌의 윤리를 요구하는 인간이 갖는 두 차원의 정서들은 보살핌의 윤리와 윤리 일반의 합리적인 토대 역할을 한다.   노딩스가 말하는 두 가지의 정서는 상이한 두 가지 차원에서 파악된다.   첫번째 차원의 정서는 자연적 보살핌의 정서와 윤리적 보살핌의 정서로서 활동적인 덕(active virtue)에 요구되는 느낌들이고, 두 번째 차원의 정서는 윤리적 행동의 근원으로서 타자에 대하여 그리고 이상적 자아에 대하여 느끼는 정서이다.   자연적 보살핌의 정서와 윤리적 정서는 동일한 차원의 것이지만 전자는 시초의 힘을 부여하는 정서(initial and enabling sentiment)로서 후자에 선행한다. 자연적 보살핌의 정서는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 작용하는 정서로서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자연적으로 보살피게 한다.   이와 달리 윤리적 보살핌은 자연적 보살핌에서 요구되지 않는 (의도적) 노력을 요구한다. 노딩스는 윤리적 보살핌이 노력을 요구한다고 하여 이것이 자연적 보살핌보다 낫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노딩스는 칸트가 윤리적인 것을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무감에 의해 행해진 것과 동일시하며, 의무감에 의한 행동을 사랑에 의한 행동과 구별한 것은 본질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칸트처럼 윤리적 보살핌이 자연적 보살핌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첫번째 차원의 정서 즉 자연적 보살핌과 윤리적 (보살핌의) 정서와는 별도로 두 번째 차원의 정서가 존재한다.   두 번째 차원의 정서는 윤리적 행동의 근원으로서 다시 두 가지로 식별된다. 하나는 타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느끼는 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최초의 느낌을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여 이를 유지하는 최선의 자아(the best self)에 대하여 그리고 이 최선의 자아를 위하여 느끼는 정서이다.   후자는 최선의 자아에 대한 비전으로서 '나는 해야 한다(I must)'라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서약할 때 윤리의 주체를 인도하는 윤리적 이상을 말한다. 이 이상은 보살피고 있는 우리 자신과 보살핌을 받는 자에 대한 최선의 청사진으로서 우리보다 나은 사람을 모델로 삼아 더욱 채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상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국한되며,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   2) 인간 존재의 상호 연결성 내지는 의존성이 보살핌의 윤리를 요구한다는 점   보살핌의 윤리가 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가에 대한 대답은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다. 자신과 타인 간의 필연적 연결성에 대한 지각은 삶의 상호 의존성을 직시하게 하여 보살핌의 윤리의 필연성을 드러낸다.   길리간은 삶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통찰과 보살핌의 요구의 당위성을 이렇게 역설한다.   인간 관계의 진실은 사람들 간의 연관성을 재발견함으로써만 밝혀질 수 있는데, 연관성을 재발견한다는 것은 자아와 타자가 상호 의존적이며, 삶은 그 자체가 아무리 가치롭다고 해도 인간 관계 속에서의 보살핌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노딩스는 또한 나 자신과 타인의 근본적인 관계성(fundamental relatedness)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친밀한 타자와의 피할 수 없는 연계(irrevocable linkage)가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라고 본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부터 혼자일 수 없으므로 자연적으로 관계 속에 있고 이 관계성 속에서 자양분을 얻고 방향성을 지각한다.   나는 나 자신이 혼자일 때도 나의 관계를 세우려고 하고 나 자신의 개체성을 관계들의 조합 속에서 정의하여 이것을 곧 나의 근본 현실(basic reality)이라고 본다.   노딩스는 윤리적 자아도 이 근본적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탄생한다고 본다. 윤리적 자아는 나의 실제적 자아(actual self)와 보살피는 자와 보살핌을 받는 자로서의 나의 이상적 자아(ideal self) 사이에 존재하는 동적 관계아이다.   이 윤리적 자아와 타자의 관계로 말미암아 나는 자연적으로 타인에게로 연결되고 나는 이 타인에 의해 나 자신에게로 다시 연결된다. 내가 타인을 보살피고 타인에 의해 보살핌을 받음에 따라 나는 나 자신을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윤리적 자아의 완성은 타인에게만 의존해 있는 것도 자신에게만 의존해 있는 것도 아니며 타인과 자아 모두에게 의존해 있다. 그래서 보살피는 자와 보살핌을 받는 자의 상호성은 존재의 연관성과 의존성의 필연적 결과로서 보살핌의 윤리를 행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요소이다.          3-3. 보살핌의 윤리의 전개   길리간은 임신하고 있거나 임신 중절의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신과 타인 사이에 보살핌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관찰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보살핌의 윤리는 세 단계의 과정을 밟으면서 발전된다.   보살핌의 윤리가 발전됨에 따라 자아의 도덕 의식의 발달 단계가 드러나며, 이에 따라 보살피는 자의 자아 개념도 변화하고 타인과의 인간 관계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다.   제1단계: 제1단계에서 자아는 자신과 타인 혹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간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과 자신의 복지만을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아는 타인이 입는 손해나 불이익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제2단계: 제2단계에서 자아는 자신과 타인,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사이의 연결성을 보면서 타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이나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어서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보살피려는 생래적이고 모성적인 도덕을 채택한다.   자아는 자신의 복지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미루고 타인의 복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자기 희생적 도덕심을 중심으로 행동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아가 자신의 복지와 타인의 복지를 동시에 고려하는 어떠한 징후도 찾아볼 수 없다.   제3단계: 제3단계는 자아가 제2단계의 자기 희생적인 불평등 관계에 대해 모순을 느껴 이를 극복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자아는 타인에 대해 느꼈던 책임감만큼 동일한 책임감을 자신에 대해서도 느끼게 되며 양자의 복지를 모두 고려하는 평형 원리를 채택한다.   상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이 단계의 관건이며 자아는 어느 한쪽만을 고려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해로운 것이라는 도덕적 태도를 내면화한다. 책임감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동등하게 나누어진다.   길리간은 보살핌의 윤리의 발달 과정에 중요한 것은 자신과 타인의 상호성에 대한 의식과 이에 따른 책임감의 균등한 분담이라고 한다. 자아는 상호성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책임감의 분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 단계로 발전 이동한다.   자아는 제1단계와 제2단계, 그리고 제2단계와 제3단계 사이에서 앞 단계의 모순을 발견할 때 그 단계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그 이후의 단계로 옮아가지도 못하는 과도기를 체험한다.   따라서 자아는 두 차례의 과도기를 체험하게 되는데,   첫번째 과도기는 자아가 자기 자신의 이기심을 인식하게 될 때 일어나고 두 번째 과도기는 자아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적 보살핌에 대하여 모순을 느낄 때 일어난다.   길리간에 의하면 이 두 과도기는 자아가 다음 단계의 발달된 보살핌의 윤리로 이행해 갈 때 도덕적 자아가 겪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두 번의 과도기는 보살핌의 윤리를 발전시켜 가는 자아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자아는 과도기에서 기존의 도덕관의 붕괴를 겪음으로써 다음 단계의 도덕 발달을 위해 필수적인 위기 상황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길리간은 인간의 도덕 발달에서 위기가 갖는 의미를 강조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길리간은 책임감과 자기 의식의 발달에 따른 도덕 의식의 성장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다음장으로 ->>계속 ->(3/4)   제 7집_8 (2/4) 자비의 윤리와 보살핌의 윤리의 비교 윤리학적 고찰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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