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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無染國師(799~888):
무염국사
또 한 사람 최언위와 관련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는 스님은 無染(무염)이다.
스님은 馬祖道一(마조도일)의
法嗣(법사)로서 梵日(범일)과 함께 禪宗(선종)을 대성시킨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최언위는 그의 비문에서 자신을 스님의 종제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연배의 차이는 나지만, 모든 면을 고려할 때 최치원과의 관계보다는 무염국사의 종제라는 사실이 더욱 타당성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최언위에게 끼친 외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낭혜 무염이 신라 왕실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볼 때도 이같은 인식은 가능할
것이다.
경문왕 12년(871)에 설산에 있는 오색석사에서 당시 國師(국사)였던 法性禪師(법성선사)에게
楞伽經(능가경)의 중심사상을 익히고, 부석사의
釋澄大德(석징대덕)에게 華嚴(화엄)을 배우고 난 후 당에 건너갔던 무염은 귀국 후 성주산문을 개창하는데, 당시 聖住山門(성주산문)의 기반은 최고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국내 최고의 기반을 지녔고, 더욱이 국사로서 활동했던 무염의 사상은 당연히 최언위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성주산문과 관련된 재가제자들로는 蘇判 鎰(소판
일), 執事侍郞(집사시낭) 寬柔(관유), 具江都護(구강도호) 咸雄(함웅), 全州別駕(전주별가) 英雄(영웅)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왕손이었다는
사실은, 설령 무염과 최언위가 친척간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속에서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규합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무염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이유는,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무염이 지녔던 선종의 계보는 曹洞宗(조동종) 계열로 보이는데, 이는 최언위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해동사무외 스님들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하기에 이러한 추측은 더욱 타당성 있다고 생각된다.
최언위의 정치적 위상은 상당히 높았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그가 불교를
신봉하였고 또한 당대의 선사들과 폭넓게 교류하였겠지만, 그가 직접 찬술한 비문상의 문인이라는 용어는 그가 어떤 불교인식을 지닌 이들과
교우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거론한 것을 정리하면 최언위는 중국을 거쳐 선사상을 수용했던 이들과 폭넓은 교류를 이루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그들이
지녔던 선의 특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조동종 계열의 스님들이라고 믿어진다. 그 신앙의 특성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술하고자 한다.
2. 佛敎認識과 信仰: 불교인식과 신앙
최언위의 불교에 대한 지식은 그가 찬술했던 고승들의 비문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신앙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경전 등을 읽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읽었던 불교서적에 대해서는, 長湍(장단)
五龍寺(오룡사) 法鏡大師(법경대사) 普照慧光塔碑(보조혜광탑비)에 나타난 짧은 기사를 통하여 추정해 볼 수 있다.
일찍이 장경을 보고 또 고승전을 살펴보니, 송의 무제가 적을 평정할 때 覺賢(각현) 삼장이 附鳳(부봉)하는 정성을 이루었고, 수의 문제가
省方(성방)함에 法瓚(법찬)대사가 從龍(종룡)의 성의를 다하였으니 일심으로 법을 소중히 받든 것은 천재에 똑같은 이치이니 어찌 신기만을 기약하리오.
상기한 기사의 내용처럼 최언위는 불교대장경과 고승전을 통하여 그의 對國家觀(대국가관:王에 대한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을 정립하고 있다.
대장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전을 포함하는지는 특별히 논의되지 않아도 되지만, 고승전은 최언위의 생몰 연대로 비추어 볼
때 梁高僧傳(양고승전)내지는 續高僧傳(속고승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두 고승전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었던 경전 분류의 방법을 토대로 그가
폭넓은 경전을 섭렵하고 있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참고로 경전에 대한 성격을 고승전에서 분리한 것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① 譯經(역경) ② 義解(의해) ③ 神異(신이)[梁(양)]－習禪(습선)[續(속)]
④ 習禪(梁)－明律(명율)[續] ⑤
明律(梁)－護法(호법)[續] ⑥ 亡身(망신)[梁]－感通(감통)[續]
⑦ 誦經(송경)[梁]－遺身(유신)[續] ⑧ 興福(흥복)[梁]－讀誦(독송)[續]
⑨ 經師(경사)[梁]－興福(續) ⑩ 唱導(창도)[梁]－雜科(잡과)[續]
그렇다면 그의 불교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 奉化(봉화) 太子寺(태자사) 朗空大師(낭공대사)
白月栖雲塔碑文(백월서운탑비문)에는 그 인식의 편린을 살펴볼 수 있는 기사가 있다.
① 듣건대 진리의 경계는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으며 현현한 진리의 세계로 가는 나루터는 멀고도 아득하니, 맑기는
푸른 바다와 같고 멀기는 높은 허공과 같도다.
분별의 배로써 그 끝까지 이를 수 없으니, 하물며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되었고 범부의 어둠이 더욱 깊어져서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삐 없는 말처럼 떠도는 의식을 조복받기란
더욱 어렵도다.
이로 인하여 헛된 것만 따라가고 진실을 저버리는 자들이 모두 逐塊(축괴)하는 뜻을 품고 유에 집착하고 공의 이치에 미혹한
이는 모두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로 잘못 알고 그곳으로 좇아가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만약 철인이 출세하고 開士(개사)인 도사가 때때로
나타나 진종을 나타내며 참된 방편을 널리 선양하지 않으면 어떻게 중중현현한 진리를 분석하여 衆妙(중묘)의 문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으리오.
상기한 기사는 그가 49 57세 사이에 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위의 기사와 비교할 만한 것은 그가 70세를 넘기며 기록한
海州(해주) 廣照寺(광조사) 眞澈大師(진철대사) 寶月乘空塔碑文(보월승공탑비문)과 長湍(장단) 五龍寺(오룡사) 法鏡大師(법경대사) 普照慧光塔碑文(보조혜광탑비문)의 내용이다.
② 대저 도란 마음에 있고 밖에 있지 않으며, 나를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요, 결코 타인으로 말미암음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제왕과 필부의 닦을 바가 각각 다르지만 임금께서는 비록 군사를 동원하여 적과 싸우더라도 항상 백성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왕이란 본래 사해로써 집을 삼고 만민을 아들로 여겨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말고 죄가 있는 무리만을 엄선하여 다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 곧 널리 중생을 제도함이라고 합니다.
③ 이른바 불도를 홍포함에 있어 어찌 가문의 귀천을 논할 것이며, 선종을 안창함에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빌어 한가로운
마음으로 선문을 대할 수 있으랴.
문자를 떠나 항상 심경을 생각하여 객진 번뇌를 말끔히 떨어버리고 이치를 얻는 데서 저 편방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미매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운거의 법인을 전해 받아 일역에 중흥시키려고 다짐하였으니, 이는 곧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爲法忘驅(위법망구)의 정신이라 하겠다.
상기한 ①, ②, ③의 기사를 보면 젊은 날의 불교에 대한 생각과 칠십이 넘은 나이의 삶에 대한 觀照(관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①에서는 진실을 저버리는 자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며 원숭이와 같이 날뛰고 고삐 없는 말처럼 떠도는 그들의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위대한 스승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②, ③의 기사에는 그 젊은 날의 호탕한 기상은 사라지고 없다. 아니 오히려
원숙해진 선사상의 본질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최언위 스스로 도란 마음에 있고 밖에 있지 않으며, 나를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요
타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불교의 본질은, 모든 선을 행하고 인을 행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말년에 爲法忘驅(위법망구)의 정신을 생각했던 최언위에게 있어서 불교인식의 주된 방향은 역시 선종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당대의
스님들도 화엄으로 대표되는 교학사상을 거쳐 선종을 함께 아우르고 있고, 지식인들도 유교와 도교 그리고 교종과 선종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대 지식인의 모습은 찬술된 비문에서도 보이고 있다. 곧 長湍(장단) 五龍寺(오룡사) 法鏡大師(법경대사) 普照慧光塔碑(보조혜광탑비)의 내용이
그것이다.
스님의 아버지는 슬기롭고 예악을 좋아하였으며 공자와 노자의 도를 배우고 따라 지키며 공사를 받들어 죽을 때까지
종사하였다.
즉 法鏡慶猷(법경경유)의 부친을 거론하여 공자와 노자의 도를 따라 배우고 지키며, 공사를 받드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당대의 '이상적인 인물형'에 대한 찬자의 생각이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언위에 대한 평가는 당대에 이루어지고 있다. 奉化(봉화) 太子寺(태자사)
朗空大師(낭공대사) 白月栖雲塔碑(백월서운탑비)의 내용이 그것이다.
최인연은 진한의 무족 사람이다. 이른바 일대의 삼최가 모두 당나라에 유학하여 금방 급제하고 귀국하였으니 최치원, 최인연, 최승우
등인데, 인연은 그 중간에 속하는 사람이다.
학문은 학해를 두루 덮었고 열람한 책은 오거에 이거를 더하였으며 재주는 풍운을 모두 맡아
칠보시의 재능에서 삼보를 제하였으니, 실로 군자국의 군자이며 또한 대인향의 대인이라 하겠다.
이러한 최언위에게 있어 선종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海州 廣照寺 眞澈大師 寶月乘空塔碑와 長湍 五龍寺 法鏡大師
普照慧光塔碑
해주 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와 장단 오룡사 법경대사 보조혜광탑비에는 그 일부를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① 육신보살인 惠可(혜가)선사는 노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항상 천축에서 탄생한 우리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말하였으며, 공자도
제자들로부터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 성인이냐고 물음에 대하여 서방의 석가는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화가 되는 대성인이라고
찬양하였다고 들었다.
② 달마대사는 總持(총지)의 임원이요 不二(불이)의 천택이다. 그는 멀리 중국에 선법을 전하고자 양나라로 건너와서 양무제를 만났으나 기연이
투합하지 못하였다.
다시 위나라로 가서 효무제를 만나고는 아직 선법을 펼 때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숭악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하였다.
법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법인을 전수하지 않다가 대홍인 혜가를 만나 심법을 주고 겸하여 가사를 줌으로써 신표를 삼았으니
이 또한 우담발화가 세상에 한 번 핀 것과 같았다.
그후 5조 홍인대사에 이르기까지 사자상승하면서 그 도가 더욱 존중되어 끊어지지
않았다.
6조 大鑑(대감)에 이르러서는 모든 종파가 함께 존숭하였으니 그후부터는 많은 英衲(영납)이 출세하여 분파 대립 수견이 심하게 되자 이때부터
선의 전수가 중단되고 말았다.
③ 대개 듣건대 영취산에서 종지를 개창하여 무위의 교화를 가르쳤고 계족산에서 멸진정에 들어 미륵부처님의 출세를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먼저 미묘한 법언을 설하며, 때로는 처음부터 선행을 권장하였다.
그러므로 교외에 따로 전한 正法眼藏(정법안장)으로 깊이 물어 본다면
모두가 해탈 아닌 것이 없다.
달마는 혜가대사에게 눈 속에 서서 신표로 팔을 끊어 바친 신심을 보고 오직 도를 위하는 위법망구의
정신을 확인하고서야 법인을 전해 주었다. 그로부터 뛰어난 영납이 계속 출세하여 법손이 상승함으로써 그 도가 날로 새로워지고 천하에
두루 전파되었으니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이 혜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④ 당시의 소문에 운거도응의 도덕이 선종에서 으뜸이며 공덕은 善逝(선서)에 못지 않을 뿐만 아니라 寶樹(보수)에는 왕자가 되고 禪株(선주)에서는
제일인자였다고 한다.
⑤ 경유, 형미, 여엄, 이엄 등은 모두 도응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해동에서 四無畏大師(사무외대사)라고 일컬어졌다.
위의 기사는 석가모니를 위대한 성인으로 인식하여
① 달마로부터 시작된 도가 날로 새로워지고 경유에 이르기까지 그 혜명이 전해지고
있으나 ③, 6조 대감 혜능에 이르러서는 대립이 심해져 선의 전수가 중단되었다고
②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④,
⑤의 기사를 통하여 당시 雲居道膺(운거도응)을 중심으로 하는 禪風(曹洞宗:조동종)이 제일이었다고 하고, 이를 전수한 慶猷(경유)
· 逈微(형미) · 麗嚴(려엄) · 利嚴(이엄)을
海東四無畏(해동사무외)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거론된 해동사무외는 최언위와는 각별하다고 생각된다.
경유에게는 재학제자로, 이엄에게는 문인으로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바꾸어 얘기한다면 이들 사무외의 불교인식의 태도는 바로 최언위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동종이 지니는 사상과 신앙의 특성은 무엇인가 ?
조동종의 조사격인 洞山良介(동산양개:
807∼869)의 중심사상은
寶鏡三昧歌(보경삼매가)에 있다. [보경삼매가]는 4언 94구 376자로 성립된
소편으로서 石頭希遷(석두희천)의 參同契(참동계)와 더불어 조동종의 '正偏回互(정편회호)'의 宗旨를 서술한 宗典(종전)이다.
'정편회호'의 종지란 佛祖密付(불조밀부)의 그 法(법)이
偏(편)이기도 하고 正(정)이기도 한 이치를 밝힌 것이다. 곧 이것을 寶鏡(보경)에 비춘 하나의 형체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形(형)과 影(영)을 相付(상부)할 때 만약 '그림자[影(영)]'로써 '그것[汝(여)]'이라고 한다면 그밖에 '또 다른 그것[渠(거) : 形(형)]'이 있게 된다.
그런데
影은 '또 다른 '그것[渠 : 形]'은 아니므로 '그것[汝]'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다(그림자는 분명 실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반대로 影을 '또 다른 그것[渠]'이라 한다면 渠(거)의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또 다른 그것[渠 : 形]'과
거울에 비추인 '그것[汝]'은 같은 것이므로 '또 다른 그것[渠]'이라고만 부르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곧 法은 非, 非는
正非偏(정비편), 亦正亦偏(역정역편)의 본질을 지니고 있어, 비록 正(정)이라 하나 動(동)하면 偏(편)이 顯現(현현)하므로 偏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또 비록 偏이라
할지라도 正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正을 떠나지 않으니, 正과 偏은 不二無別(불이무별),
그리고 德用自在(덕용자재)하다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이러한
논지는 君臣(군신) 및 父子(부자)의 도리에 대비하여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洞山(동산)의 風(풍)은 운거에 이르면 변화되고 있다.
곧 세상사를
인연 맺지 않는 것[無結緣(무결연)]은 물론이요, 생각하고 헤아림이 없는[無思量(무사량)]
無心(무심)으로써 宗風(종풍)을 삼았던 것이다.
생에 집착하지도 않고 죽음에
집착하지도 않는 도만을 위한 삶이 운거의 자유자재한 도풍이니, 곧 운거의 법을 요약한다면,'一切卽萬法 萬法卽一心 一心卽一切性(일체즉만법
만법즉일심 일심즉일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동산이 주장한 '不二無別(불이무별)'과 운거가 주장한 '一切卽萬法 萬法卽一心 一心卽一切性'의 정신이 조동종의 커다란 특징이라면, 당연히
그에게 心法(심법)을 받은 신라의 스님들은 그와 비슷한 선사상을 전개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언위와 관련된 이엄과 경유는
이런 조동종의 종풍을 중요시 여겼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해동사무외 스님들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현실에서
이같은 추정이 가능하다면, 그 역사적 의미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곧 동산에게서 보였던 '正偏回互(정편회호)'의 사상은,
9세기 말 사회의 변동기 속에서 理想的인 君臣關係(군신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운거의 '一切卽萬法 萬法卽一心 一心卽一切性'은
재가신자들에게 마음의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마음의 수행을 위하여 계율을 닦으며 바른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생각은 비문의 일부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계율과 관련된 기사들이 유독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海州 廣照寺 眞澈大師
寶月乘空塔碑文과 奉化 太子寺 朗空大師 白月栖雲塔碑文
해주
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문과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문에는 草繫比丘(초계비구)의 持律(지율)정신이 강조되어 있다.
초계비구는
梵網經(범망경)과 涅槃經(열반경)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부처님 당시의 어떤 비구가 토굴에서 수도하다가 도적에게 물건을 빼앗기고 풀에 묶여 있었으나,
스님은 풀이 손상될까 봐
7일간이나 그냥 묶여 있다가 때마침 왕에게 구원을 받고 감동한 왕이 王師(왕사)로 모셨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계율관은 楞伽經(능가경) 에 포함된 오신채와 비린내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금기의 내용에서도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 한
가지 운거가 주장했듯이, 세상사를 인연 맺지 않는 것[無結緣(무결연)]은 물론이요, 생각하고 헤아림이 없는[無思量(무량심)]
無心이 중요하다는 인식 또한
비문의 내용 중에 강조되어 있다. 다음을 보자.
지극한 도리는 본래 無爲法(무위법)이니
마치 대지가 無念無作(무념무작)한 것과 같네.
차별한 만법이 마침내 回歸(회귀)하니
천문만행 그 근원은 일치하도다.
상기한 기사는 奉化 太子寺 朗空大師 白月栖雲塔碑文(봉화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문) 중에 있는 명이다. 그런데 이러한 無爲法에 대한 것이 海州 廣照寺 眞澈大師
寶月乘空塔碑文(해주 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문)에도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Ⅳ. 結 論
최언위는 나말여초의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새로운 고려사회가 건국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겪었던 인물이다. 대부분 사회의 전환기 속에서는 도태되어 간 인물들이 많았던 반면 최언위는 당시의 이름 있는
선사들의 비문을 지어 그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본고는 그가 찬술한 비문 가운데 門人(문인) 내지는 在家弟子(재가제자)로 자칭했던 碑文(비문)을 중심으로 그의
佛敎認識(불교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비문이 갖는 성격상 깊이 있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각 장의 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최언위가 살았던 시대는 불교가 生活倫理(생활윤리)로서 자리잡았던 시기였다. 유교가 하나의 政治理念(정치이념)으로서 가능했다면, 불교는 생활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왕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菩薩戒(보살계)－大乘(대승)의 보살들이 받아 지니는 계율이었던－를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었다고 생각된다.
成佛(성불)을 위한 修行(수행)과 僧侶(승려)에 대한 布施(보시) 그리고 佛事(불사)에 참여하여 많은 功德(공덕)을
쌓는 일은 당대를 사는 사람들이 당연히 생각했던 생활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승려가 되어 나라와 가정의 평안함을
기원하고, 조상의 극락왕생과 개인의 성불을 위하여 기도와 수행을 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실은,
최언위의
시대는 敎宗(교종)이 지녔던 한계성들이 노출되고, 禪宗(선종)의 새로운 분위기가 파생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재가신자들은 선종에
많이 경도되었고 최언위에게 있어서도 일정한 흐름이 발견되는데, 바로 曹洞宗(조동종) 계열의 禪思想(선사상)이 그것이다.
최언위가 지녔던 보살계관은 圓光(원광) 이래로 元曉(원효)에까지 지속되어 왔던 '新羅化(신라화)된 佛敎倫理(불교윤리)'였다고 생각된다.
곧 원광시대에 강조된
事君以忠(사군이충) · 事親以孝(사친이효) · 交友以信(교우이신)
· 臨戰無退(임전무퇴) · 殺生有擇(살생유택)의 이념은 儒敎的(유교적)인 측면에서만 파생되었던 것이
아니라
阿含經(아함경) · 仁王護國般若派羅密經(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
· 梵網經(범망경) · 無量壽經(무량수경)
등의 佛敎的인 淵源(연원)이 강조된 개념인데, 원효시대에도 이러한 신라인들만의
독특한 불교윤리관이 유지되고 있다.
곧 그의 [菩薩戒本持犯要記(보살계본지범요기)]에 의하면 '自讚毁他(자찬훼타)'에도 福(복)
· 犯(범) · 染(염) · 重(중) 4가지 차별이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信心(신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든지, 성격이 放逸(방일)해서 나쁜 생각 없이 한 것, 어떤 사람을 특별히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아주 重(중)하지 않다는 독창적인 견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제시하고, 누구나 성불할 수 있으니 기본적인 계율을 지켜 나가자 하는 분위기는 신라불교의 대중화를 한층 가속화시켰고,
당시의 재가신자들은 이러한 논리 안에서 성불을 위하여 더욱 많은 공덕을 쌓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다.
한편, 대중화된 보살계관을
지녔던 재가신도들의 신앙은 당대에 유행했던 結社佛敎(결사불교)와 寺刹(사찰)과 佛塔(불탑)의 조성 등 많은 불사를 통하여 확인되고 있다.
그들은 香徒(향도), 僧徒(승도),
善士(선사), 處士(처사), 居士(거사) 등의 이름으로 결사의 모임과 불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최언위는 거사라는 개념에 조금 더 가까운 존재였다고
생각된다.
거사를 비롯한 다른 개념들은 조금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언위가 교류했던 불교계의 승려들은 비문을 통하여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朗空行寂(낭공행적)과 眞鏡審希(진경심희), 眞澈大師(진철대사) 利嚴(이엄)과 法鏡大師(법경대사) 慶猷(경유)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최언위가 당으로 입국하기 전인 30세 이전에, 고려왕조로 넘어가기 전인 신라체제 안에서 교류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곧 그의 불교 인식은 30세 이전에 어느 정도 정착되어 후일 한층 완숙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사람
특기할 인물은 無染(무염)이다. 최언위는 무염의 從弟(종제)였던 만큼 그가 지녔던 사상은 최언위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스님이 경영했던 聖住寺(성주사)의
정치 · 경제적 기반은 나말여초 시기에는 상대할 사찰이 없을 정도로 컸던만큼 그 영향력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언위의 불교인식은 상기한 승려들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곧 그가 스승으로 생각했던 분들 가운데 진철 이엄과 법경 경유는
조동종 계열의 雲居道應(운거도응)에게 똑같은 선을 배우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언위의 선이 지녔던 경향은 조동종 계열의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추정은 무염과의 관계를 볼 때 더욱 그렇다. 無染(무염) 역시 조동종 계열의 선을 배우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신앙의 특성은
무엇일까? 洞山(동산)이 생각했던 法은 非, 非는 正非偏(정비편), 亦正亦偏(역정역편)의 본질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비록 正(정)이라 하나 動(동)하면 偏(편)이 현현하므로
偏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또 비록 偏이라 할지라도 正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正을 떠나지 않으니 正과 偏은 不二無別(불이무별), 그리고
德用自在(덕용자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洞山(동산)의 風(풍)은 雲居(운거)에 이르면 변화되고 있다.
곧 세상사를 인연 맺지 않은
것[無結緣(무결연)]은 물론이요, 생각하고 헤아림이 없는[無思量(무사량);
무량심]
無心으로서 宗風(종풍)을 삼았던 것이다. 생에 집착하지도 않고 죽음에 집착하지도 않는
道(도)만을 위한 삶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곧 동산이 주장한 '不二無別(불이무별)'과 운거가 주장한 '一切卽萬法 萬法卽一心 一心卽一切性(일체즉만법
만법즉일심 일심즉일체성)'은 마음의
수행과 無爲法(무위법)의 실천을 중요시 여기는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언위의 비문을 통하여 드러나는 持律精神(지율정신)은 바로 계율을 통한 마음의
수행을 의미하며,
지극한 도리는 무위법이라고 하는 인식은 운거로부터 전해 받은 이엄과 경유를 통하여 체득되었던 사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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