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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唯識佛敎(유식불교)는 인간의 삶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眞爲(진위) · 善惡(선악) · 美醜(미추) 등 인간의 모든 판단과 행위가 인식작용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본다.
그래서 유식불교는 인간의 일상적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해명하는 동시에, 참다운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
이처럼 인간의 일상적 인식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서 인간의 삶의 모습을 해명하고, 참다운 인식으로의 전환을 통해서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유식불교다.
유식불교를 공식적으로 표명된 모든 종류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인식비판학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하고, 유식사상 전체를
인식론의 반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유식불교의 이러한 특징을 일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유식불교가 인식의 묹에 대해서 보여주는 통찰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圓測(원측;
613~696)의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 것이다. 필자는 圓測(원측)이
安慧(안혜;
Sthiramati, 470~550)를 거쳐 眞諦(진제; 499~569)에게 전승된 無相唯識(무상유식)의
흐름_[舊唯識(구유식)]과, 護法(호법; Dharmap la, 530~561)을 거쳐 玄장(현장;
602~664) - 窺基(규기; 632~682)에게 계승된 有相唯識(유상유식)의
흐름_[新唯識(신유식)]을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원측의 敎判論(교판론)과 敎體論(교체론) 및 一闡提成佛論[일천제(리)성불론]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확립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필자의 이러한 관점이 인식의 문제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도 성립할 수 있는지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원측 유식사상의 특징과 의의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2. 唯識의 의미에 대한 이해
唯識(유식;vij apti-m tra)이란 말 자체 속에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인식에 대한
강한 비판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世親(세친;Vasubandhu)의 唯識二十論(유식이십론)을 통해서 검토해 보자.
대승에서는 '3종의 현상세계[三界(삼계)]는 오직 識(식)뿐이다'라고 주장한다. ···
오직이라고 하는 것은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頌;송): 이 모든 것은 실로 다만 表像(표상)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은 대상이 (존재하는 것과) 유사하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눈병이 난 사람에게 (실재로는) 없는 머리카락이나 달 등이 보이는 것과 같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식이란 말은 단지 마음에 비추어서 나타난 표상만이 있고[唯識(유식)], 표상과 대응하는 외계의 존재물은
없다[無境(무경)]는 것을 표명하는 말이다.
이 말을 통해서 識 외에 의식을 성립시키는 원인이 되는 어떤 초월적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는
일상적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인식주체로서의 자아와 인식대상으로서의 객관세계가 외부에 존재하고, 그 사이에 인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본다"든가 "나는 바둑알을 만진다" 등으로 말한다. 보는 자와 보여진 것
· 만지는 자와
만져지는 것이 보는 작용 · 만지는 작용에 앞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과 관계없이 나와 책과 바둑알은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유식사상은 이러한 일상적 사고와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인식작용이 있을 뿐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은 마음이 임시로 설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의 경험이 있고 거기에 근거하여 나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가 사변적으로
상정된다고 말한다. 마음에 떠오로는 표상만이 유일한 직접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아르키메데스의 점처럼 거기서
출발하고 거기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마음작용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통일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유식사상이다.
마음에 투용된 표상만이 있고 그것에 대응하는 외적 사물의 실재를 부정하는 唯識無境(유식무경)이라는 명제는 지성이나 이론에 의해서 추론된
것이 아니라, 요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선정체험에서 자각된 것이다.
선정체험에 있어서 떠오르는 대상이 마음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일상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인식내용도 외계의 존재와 무관한 마음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평상시의 인식도 선정시의 인식과 본질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식사상은 요가를 실천하는 수행자들이 자신의 체험을
남김없이 설명한 교리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입장을 따르는 학파를 유가행파(yog c rin)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 唯識無境에 대한 신·구 유식의
해석(유식무경...)
유식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고 있는 [해심밀경]의 分別瑜伽品(분별유가품)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미륵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毘鉢舍那三摩地(비발사나삼마지)[정신을 산란하지 않게 하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자세히
관찰함] 중에서의 영상은 이 마음과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둘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영상은 오직 識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識의 대상은 오직 식이 顯現(현현)한 것이다[識所緣唯識所現(식소연유식소현)].
이는 선정시 떠오른 영상은 그것에 대응하는 실재 사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無別境義(무별경의)], 식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唯識無境(유식무경)의 의미는 식과 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분명해 질 것이다.
여기서 그 존재성이 부정되는 境(경;
artha)의 의미는
무엇인가? 경에 대한 이해의 면에 있어서 신 · 구 유식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장은 경을 外境(외경) 또는 實境(실경)으로
漢譯(한역)하고, 진제는 外塵(외진)으로 번역한다.
번역어로 사용하는 말은 약간 다르지만, 그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식을
성립시키는 원인으로서, 식을 떠나서 초월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
· 구 유식설은 대상의 외계실재론을 주장하는 이전의
학석들을 적극적으로 논파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런데 식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는 안혜
- 진제로 이어지는 구유식 계통과 호법 - 현장으로
이어지는 신유식 계통은 그 견해를 전혀 달리한다. 그러므로 먼저
식에 대한 양자의 이해가 어떻게 다른가를 밝힘으로써 신
· 구 유식의
견해차이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원측의 입장은 어떠한가를 살펴 나가기로 한다.
신
· 구 유식의 식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안혜의 梵文(범문) 주석[및 이를 계승한 진제의 轉識論(전식론)과
成唯識론(성유식론) (호법의 주석을 현장이 漢譯(한역)한 것]을 비교함으로써 극명하게 드러난다.
一切唯識(일체유식)을 표명하는 [유식삼십송]의 제17송에 대한
두 주석을 비교해 보자.
이 식이 변화해서 된 것[轉變(전변), pari ma]은 허망분별이다. 무릇 이 허망분별에 의해서 분별된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일체는 오직 식뿐이다 (안혜의 '유식삼십송석론').
이 여러 가지 식이 변화해서 분별하는 것과 분별되는 것으로 된다. 이 때문에 그것들(我와 法)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체는 오직 식뿐이다 (성유식론).
안혜와 진제의 경우 식(vij na)은 3종의 식(제8식
· 제7식 · 제6식)을 말하는 것이고, 이 식이 곧 허망분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식은 어디까지나 '그릇되게 인식하는 것'으로서, 인식하는 작용[能緣(능연)]만을 의미하고, 인식되는 것[所緣(소연)]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릇되게 인식되는 것(분별된 것)은 바로 자아[我]와 사물(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식의 활동(vij pti)만 있을 뿐, 그릇되게 인식되는 대상[境]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안혜는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작용은 있지만, 그로 인해 인식되는 대상의 존재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어떠한 의미의 경도 없다고 한다.
이처럼
식을 엄밀히 인식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無境(무경)을 어떤 의미의 경도 없다고 엄밀하게 사용하게 되면, 유식무경이란 어떠한 경도 없는 데서
즉 아무것도 대상화하지 않고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자기 자신 외에 어떠한 경도 없이 인식한다면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일까
?
결국 식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셈이다. 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식 그 자체가 경과 비슷하게 현현하는[似現(사현)]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과 경은 동일한 것이다.
식과 경은 둘이 아니요 무분별이기 때문에, 경의 부정[無境(무경)]은 동시에 식의 부정을
함의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유식무경은 결국 경도 식도 없다[境識俱泯(경식구민)]는 데로 귀착한다.
이렇게 되어 유식은 無分別知(무분별지)와
眞如(진여)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구유식이 지향하는 것은 주체를 대상화하거나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그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호법과 현장의 경우에 있어서는 식(vij na) 자체가 변해서 보는 것(분별, 見分;견분)과 보여지는
것(소분별, 相分;상분)이 된다. 그러므로 보여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我와 法)은 식이 변한 것일 뿐, 외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체는 식이 대상의 형상을 띠고 나타난 것(vij pti)일 따름이다.
이처럼 현장은 식의 근본성격은 '인식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轉變(전변)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식은 인식하는 작용뿐 아니라 인식되는 것을 모두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식은 스스로 이분화하여 인식주관[見分]과 인식대상[相分]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활동체라고 한다.
그러므로 無境(무경)도 어떤 의미의 경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식이 전변하여 나타난 상분으로서의 경은 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유식무경은 식이 변해서 나타난 내경(이것은
식의 대상으로서 결국 식쪽에 포함되는 것이다)이 있을 뿐, 외부에 실재하는 대상으로서의 외경은 없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識(식;vij pti)을 '둘로 나누어(vi) 알게 하는 것(j pti)'으로 해석한다. 둘로 나눈다는
것은 인식 주관[能緣;능연]과 인식 객관[所緣;소연]으로 이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알게 한다는 것은 대상이 알려지고 주관이 대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vij pti(識)는, 인식주체인 識(식;vij na)이 자기 자신에게 인식 대상, 즉 境(경;artha)을
알게 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이분화해서 인식하는 활동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정 중에 인식대상으로서 떠오른 영상은 마음이
대상화 되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마음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즉 경은 식의 내측의 것이며 식에 내재하는 경이다.
그러므로 유식무경이라는 말은 자기가 자기의 내부에서 자기를 대상으로 본다는 것을 나타낸다.
신유식은 이처럼 식의 대상에 대해서 그
존재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有相唯識(유상유식)이라고 부른다. 신유식은 어떤 경우에도 식 자체를 무라고 부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식이
이루어지는 한 인식주관과 인식대상으로 이원화되는 구조도 변함이 없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나. 유식의
의미에 대한 원측의 이해
원측은 유식의 의미를 해설하는 곳에서, 구유식과 신유식의 서로 다른 입장 가운데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고, 양쪽의 견해를 모두 채용한다. 원측은 우선 진제 역 攝大乘論釋(섭대승론석)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별개의 식이 있어 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곧 유식이라고 하는 뜻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식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유식의 입장에서 유식을 해석하는 것으로서, 보는 식과 별개의 식이 있어서 경이 되었다고 하는 견해에 대한 비판이다. 즉
보는 것도 보여지는 것도 식이라고 하면 그것은 유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식 이외에 따로 보여지는 식이 경으로서
존재한다고 하면, 무경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유식이란 어떠한 의미의 경도 없어야 한다는 입장으로서, 신유식에서
식이 변하여 나타난 대상(상분)을 내경이라고 하여 역시 식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사고와 대조되는 것이다.
또 식이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인식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치 눈이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손가락이
손가락 자신을 가리키지 못하고, 칼이 칼 자신을 벨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식은
그 자신이 대상화되면 그것은 벌써 식이 아닌 것[非識(비식)]이 되어 버리므로, 식이 없게 되어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서 본다는 입장을 벗어나서, 心(심)과 境(경)을 구분하지 않는 무분별지를 추구한다. 유식무경이란 결국 식이 자신을
대상화하지 않고 자기를 여실히 자각해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측은 또 식 자체[自證分(자증분)]가 인식주관(견분)과 인식대상(상분)으로 이분화하여 견분이 상분을 인식하는 것이지만, 이 때의 견분과
상분은 자증분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유식이라 한다고 해설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원측은 영상이 마음이 나타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영상을 보는 것은 곧 마음이 마음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에 대답한다.
마음에 떠오른 영상은
마음이 변한 것이므로, 마음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마음 자신을 본다고 말하는 것이지, 견분이 견분을 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변한다.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인식은 주관적인 인식작용과 객관적인 인식대상이라는 두 가지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신유식의
견해에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식 주관과 객관의 무분별 내지 동일을 주장함으로써 생기는 인식불가능이라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인식주관이 인식주관 자신을 인식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측은 서로 다른 견해를 모두 긍정적으로 원용하여 해설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체계 속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잃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미시적으로 형식적인 관찰을 할 때 그렇게 보일 뿐, 원측의 해설방식을 거시적으로 살펴 보면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원측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여러 가지가 있고, 똑같이 유식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견해와 입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얻어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해결하는 것이지, 어떠한 방식에 따르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서로다른 견해가 각각 어떤 한 가지 의미나 맥락에서 시인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그것을 밝혀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근본적 입장은 사람을 깨닫게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고, 이치를 드러내는 것도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측의 입장이 유식의 의미를 해설하는 데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불타가 어떤 의도에서 유식을
설했는가에 대한 다음의 설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오직 식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식을 관찰함으로써 바깥 경계를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바깥 경계를 버리면 헛된 마음이 가라 앉게
되고, 헛된 마음이 가라 앉으면 중도를 깨닫게 된다.
··· 어리석은 자는 경계의 즐거움에 집착하여 여러 욕락을 취할뿐, 버리고 떠나고자
하지 않으므로, 삼계에서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며 온갖 괴로움을 겪을 뿐 해탈하지 못한다.
자비로운 여래는 방편으로써 모든 것이 따만
식이라는 것을 설하여 바깥 경계를 버리게 한다. 바깥 경계를 버리면 헛된 마음이 소멸하고, 헛된 마음이 소멸하면 곧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
원측은 이 설명 가운데서 유식이라고 설한 것은 좋은 의사가, 중생의 병에 따라 맞는 약을 투약하듯이, 바깥 경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밝히고 있다.
좋은 약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경우에 항상 효험이 있는 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경우에 쓰임으로써 필요한 효과를 얻느냐에 따라서 좋은 약이 되는 것이다. 약 그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을 가리기
보다는 그 적절한 쓰임에 보다 비중을 두고 불타는 모든 교설을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
불타는 자신의 가르침은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하는 뗏목과 같이,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설에 얽매이는 것은 뗏목이 자기에게
이익을 주었다고 해서 그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고 가르친다. 아무리 좋은 법(순수한 견해나 관념)이라 할지라도
버려야 할 진댄, 하물며 나쁜 법이야 두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불타의 그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원측은 교설 자체만을 분리한
상태에서 논리적 체계성이나 정합성을 문제시하지 않고, 그것이 어떤 경우에 어떤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인식의 구조에 대한 해명
유식불교는 우리들의 일상적 인식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인간 인식의 구조를
분석적으로 연구한다. 그런데 일상적 인식에 대한 가치매김과 인식의 구조에 대한 해명의 문제에 있어서 신유식과 구유식이 다르다.
구유식은 깨달음 내지 불성을 인간 본래의 상태라고 보고, 사고의 중심을 본성의 회복이라는 쪽에 둔다.
그래서 인간의 일상적 인식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각성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적 인식을 부정하고 현상의 본질(진여
· 법계)을 무분별지를 통해 깨쳐야 한다고 한다.
즉
대상적으로 인식하는 인식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종교적 수행을 통한 구조의 전환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신유식에서는 현상적인 마음(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나감으로써 진실에 도달하고자 한다. 또한 인식의
구조 자체는 깨달은 후에도 변함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인식의 질을 바꾸고자 할 뿐이다.
이처럼 신유식은 세속에서 출발하여 세속의
모습에 대한 논리적 해명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道理世俗(도리세속)의 사상이라고 불린다.
인식의 구조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한다.
안혜는 오직 自證分(자증분)만을
세웠고, 難陀(난타)와 火辨(화변) 및 親勝(친승)은 相分(상분)과 見分(견분)의 二分說(이분설)을 주장하였으며,
陣那(진나)는 相分(상분)과 見分(견분) 그리고
自證分(자증분) 등 三分(삼분)을 세웠고,
護法(호법)과
親光(친광)은 여기에 證自證分(증자증분)을 더하여 四分說(사분설)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각각의 주장이 똑같은 맥락에서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견해로서
의식적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고, 삼분설 내지 사분설을 내세우는 입장에서 그 이전의 견해를 일분설 내지 이분설로 추론하여 해석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면서 우선 이들 각각의 견해에 대하여 검토하여 보고, 원측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 나가기로 한다.
가. 인식작용의
분류(一·二·三·四分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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