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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식작용의
분류(一·二·三·四分說)
인식의 구조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안혜는 오직 식 자체(자증분)만을 인정했다고
한다. 이는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대립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絶對唯一心(절대
유일심)의 인식(무분별지)만이 옳다고 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체를 대상화하거나 개념화하는 것을 거부하며, 주체 그대로 파악하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실재하는 그대로의 나를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일상적 인식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허망분별이라고 하여, 그 존재성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一分說(일분설)은 일상적 인식의 허망성에 주목하고 그 이유를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이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마음의 본성 즉 밝게 빛나는 마음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인식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안혜의
입장을 일분설이라고 보는 것은 안혜의 眞意(진의)를 망각한 것이다. 안혜는 원래 마음 작용의 분류라고 하는 관점에서 일분설을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타 등이 주장했다고 하는 二分說(이분설)은 인식하는 주관적인 작용으로서의 견분과 인식되는 대상으로서의 상분은 서로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중 어느 하나만이 단독으로 생기거나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이 들 중 어느 하나가 빠지게 되면 인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인식이 이루어질 때의 작용[用(용)]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 기본 구조를 해명한 것으로서, 인식작용은 언제나 견분과
상분의 이원화라는 바탕 위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분설 역시 난타 등이 의도적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고, 규기 등이 사분설을 확립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는 입장에서 배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나는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한 두 계기인 견분과 상분에 대해서, 그 둘의 공통적 근거가 되는 식 자체(자체분)를 가하여 삼분설을
주장한다.
견분과 상분은 그들의 근거가 되는 본체[所依體(소의체)]가 반드시 있어야만 이들에 의한 인식작용[用(용)]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견분과
상분이 서로 관계 맺음을 하기 위해서는 그 둘의 공통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식의 중심으로서의 자체분이 상정된다.
그리하여 자체분이 나뉘어 견분과 상분으로 나타난다고 하게 되면, 비록 이운화되기는 했어도 셋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인식작용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三分說(삼분설)은 二分說(이분설)이 지니는 有用無體(유용무체)라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확립될 필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견분과 상분의 이분만을 설하는 경우에는 상분은 견분의 대상으로서 인식될 수 있지만, 견분은 어떻게 알려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견분의 존재가 확증되지 않는다면 견분가 상분에 의한 인식작용을 논하는 것도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견분을 다시 바라보는 자각작용이 있고, 그것에 의해서 견분의 존재를 확증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
의문은 사라진다.
바로 자신이 대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작용, 그것을 자기를 안다는 작용의 면에서 이름하여 자증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분설은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한 가능근거를 추구해 나감으로써 도달하게 된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법은 견분을 확증하는 것으로서 보는 자기를 자각하는 자증분을 포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를 진행하여, 자증분을 확증하는
것을 추구해 내려가 증자증분을 도출해 냄으로써 四分說(사분설)을 확립한다.
증자증분은 자기가 대상을 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 자각하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되는 이 증자증분을 확증하는 자각작용으로서 증자증분을 요청하게 되고,
이러한 요청은 끝없이 게속되어 결국 무한소급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에 대해 호법은 그럴 필요는
없고, 증자증분을 확증하는 것은 바로 자증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증분이나 증자증분이라는 것은 어느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 인식으로서의 자각작용을 뜻하는 것이므로, 증자증분을 확증하는 것으로 따로 증자증분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호법은 이처럼 자증분과 증자증분의 상호확증이라는 방식으로 무한소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사분설은 인식의 가능근거를 추구하는 삼분설의 입장을 한단계 더 밀고 나가, 인식의 내면적 주로를 한층 깊이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분설은 크게는 삼분설의 범주 속에 포섭되는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 四分說에 관한 원측의 이해
원측은 마음작용을 분석하고 인식의 구조를 해명하는 心分說(심분설)에 여러 가지 다른 견해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기존의 다양한 견해들을 사상사적인 발달과정으로 이해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식하는 마음작용을 분석함에 있어서는 가르침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불타는 대개 一分(일분)을 설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경전에서
三界(삼계)는 오직 마음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로부터 9백년이 지나서 무착
· 세친 등이 二分(이분)으로 늘려서, 상분과 견분을 말했다.
그러나
이분만으로는 이치를 다 밝힐 수 없어서, 진나가 集量論(집량론) 등을 지어서 자증분을 가하여 三分(삼분)을 세웠다. 불멸 후 천 백년에 호법보살이
厚嚴經(후엄경) 등에 의거하여 앞의 삼분에 증자증분을 더하여 다시 四分(사분)을 세웠다.
이와 같이 일분에서 사분에 이르기까지 그 열고 닦는 것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서로 어그러짐이 없다.
여기서 원측은 一·二·三·四分說(사분설)의 전개과정을 [불타
··· 무착과 세친 ···
진나 ··· 호법]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차례로 배당하고 있다.
그래서 최초의 단계인 일불설의 교리는 {화엄경}의 三界唯心(삼계유심)의 교설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유식사상 전개의 다음
단계인 무착 · 세친의 당시에는 모두[難陀(난타) · 親僧(친승)
· 護月(호월) 等(등)] 무착의 견해를 따른다고 말한다.
즉 무착이 마음의 두 요소를 인식하는 것[能取(능취), 주관]과 인식되는 것[所取(소취), 대상]으로 나누어 보는 사상에 입각하여,
당시의
학자들은 모두 二分說(이분설)을 따랐다는 것이다.
또 세친의 유식을 이어받았으며 유상유식의 開祖(개조)라 할 수 있는 진나에 의해서, 인식이 세 가지
심적 요소로 이루어 진다는 견해[三分說(삼분설)]가 확립되었다고 설명한다.
삼분설은 인식주관과 대상에 의해 이루어진 인식작용을 확인하는
自證分(자증분)을 二分(이분)에 더함으로써 인식작용이 완료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나를 이어받아 유상유식을 조직적으로 체계화시킨 호법에 의해서
四分說(사분설)로 전개되었다고 한다.
사분설은 진나의 삼분에 자증분의 작용을 한 번 더 증명하는 작용으로서 證自證分(증자증분)을 더한 것이다.
이처럼 원측은 일
· 이 · 삼 · 사분설의 견해 차이를 사상사의 전개과정 위에서 고찰함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이치를 다 밝혔느냐
아니냐의 차이, 즉 자세함의 차이가 있을 뿐, 유식의 이치 자체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해설하고 있다.
원측의 이러한 해설은 규기가
해석하고 이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정설로 인정되어 온 安一(안일)
· 難二(난이) · 陣三(진삼) · 護四(호사)[일분설은 진제
· 이분설은 난타 · 삼분설은 진나 ·
사분설은 호법이
주장했다고 하는 것]의 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기의 설은 서로 다른 네 견해를 호법과 거의 동시대의 학자들의
견해로 배당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안혜나 난타는 인식작용의 구조를 분석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의식적으로 일분설과 이분설을 주장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주장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전거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후에 규기가 호법의 사분설을 중심으로 삼분설을 조직적으로 설명하면서, 각각의 특징에 따라 임의로 배당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규기의 해석이 전연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각자의 의도와 맥락을 무시한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 원측은 각각의 견해가 제출된 역사적 맥락에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고, 그 각각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견해가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고, 이들에게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유식의 이치에 주목할 수 있었다.
원측의 이러한 이해는 규기가 호법의 사분설만이 올바른 이치를 설했다고 보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배척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규기는 위의 네 가지 견해를 평면적으로
나열하고, 이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는 입장에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규기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호법의 견해를 중심으로 하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견해들을 해석하기 때문에, 가치의 우열을 매기는 방식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원측과 규기의
불교이해의 태도에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4. 인식작용에 대한 분석
유식불교에 있어서 인간의 인식작용에 대한 탐구는 다만 인식작용을 구조적으로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적인 인식작용 하나하나의 성격과 상호관계에 대한 상세한 고찰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사분을 體(체)와 用(용)
· 內(내)와 外(외) · 主(주)와
客(객) · 인식의 3요소 · 3종류의 인식 · 染位(염위)와 淨位(정위) 등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원측도 호법의 사분설만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호법의 사상을 담고 있는 [성유식론]을 해설하는 경우에는 사분설을 이해하는 입장에 서서 치밀한 분석을 가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단편적으로 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법상 유식의 설명을 따라 가면서 원측의 견해가 피력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 나가기로
한다.
가. 인식작용의 體와 用
우선 체와 용의 관점에서 사분을 고찰하는 경우에, 두 가지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로, 사분을 모두 용으로 보는 설이다. 이 경우 사분을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 보기 때문에 어느 것도 체라고 보지 않는다. 또
사분에 대해서 체는 모두 같으나 용만 네 가지로 다르다고 보기도 한다.
둘째로, 자증분을 체로 보고 다른 것을 용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네 가지 마음작용 가운데서도 특히 주체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추구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나. 인식작용의 內와 外
다음 사분을 내외로 구분하는 경우에, 상분은 오직 바깥 세계의 모습과 비슷하게 떠오른
영상이기 때문에 오직 外라고 한다. 견분은 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內(내)라고 하고 用(용)이라는 관점에서는 外라고 한다.
자증분과 증자증분은
오직 內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외 구분은 모두 범부[染位(염위) 혹은 因位(인위)]의 마음작용에 대한 구분이다.
佛(불)의 경우[淨位(정위) 혹은
果位(과위)]에는 상분만을 外(외)로 하고 나머지는 內外(내외)에 다 통한다고 하는 견해와, 범부의 경우와 똑 같이 상분
· 견분을 外로 하고,
자증분 · 증자증분을 內로 한다는 견해가 있다.
법상종에서는 이 경우 미혹한 경우[有漏(유루)]와 깨달은 경우[無漏(무루)]를 구분하지 않는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
다. 인식의 세 요소
인식에는 인식하는 것[能量(능량)]과 인식되는 것[所量(소량)], 그리고 인식하는 작용 및
결과[量果(양과)]의 세 가지 계기가 있다. 예를 들어 자로 베를 재는 경우에, 자를 能量(능량)이라 하고 베를 所量(소량)이라 하고 길이를 아는 지적
작용을 量果(양과)라 한다. 이들은 각기 사분에 배당하면 다음과 같다.
상분이 소량이면 견분은 능량이 되고 자증분은 양과가 된다. 또 견분이
소량이 되는 경우는 자증분이 능량이 되고 증자증분이 양과가 된다. 자증분이 소량이 되는 경우에는 증자증분이 능량 및 양과가 된다.
증자증분이 소량이 되는 경우는 자증분이 능량과 양과가 된다.
라. 세 가지 인식
인식에는 직접적인 지각을 통해서 얻어지는 확실한 인식[現量(현량)]과 추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가끔 틀릴 수도 있는 인식[比量(비량)], 그리고 잘못된 인식[非量(비량)]의 세 종류가 있다. 이것을 또 사분과 연관하여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상분은 인식이 아니기 때문에 三量(삼량) 아무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견분은 삼량에 모두 통한다. 자증분과 증자증분은 오직 현량일
뿐이다. 이에 대해 원측은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견분은 단지 상분만을 인식한다. 바깥 경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바른 인식이 이루어지는 경우[量(량)]와 그렇지 않은 경우[非量(비량)]가
있다. 인식하는 경우에는 現量(현량)과 比量(비량)을 포함한다.
[집량론]에 이르기를 현량에는 세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했다. 전도됨이
없고, 유예하지 않으며, 이중으로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 이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상을 이리저리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의식은 대상을 구하거나[尋求(심구)] 대상이 무엇인지 결정하려고[決定(결정)]하기 때문에 인식이 뒤섞이고 그래서 현량이 되지 못한다.
··· 자증분은 세 가지 뜻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항상 現量(현량)일 뿐, 比量(비량)이나 非量(비량)이 되지 않는다.
견분은 이 세 가지 뜻을 갖추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三量(삼량)에 통한다.
견분이 상분을 인식하는 경우 삼량은 동시에 얻어지는 것이냐, 아니면 전후하여 얻어지느냐에 관해서도 의론이 분분한데, 법상종에서는
三量異時說(삼량이시설)을 취한다. 원측은 이에 관한 두 가지 다른 견해를 소개하고 자세히 소개한다.
첫째로, 삼량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얻어질 수 없다는 견해다.
한 대상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작용이 가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증분의 경우 견분을 대하는 경우와 자체를 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比量(비량)이 아니라 現量(현량)이다.
그러나 견분은 동일한 대상을 향하기 때문에 두 가지 다른 작용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견분의 경우에 現量(현량)과 比量(비량)이 동시에 얻어질 수 있다는 견해이다.
예를 들어, 말을 듣는 경우 음성에 대해서는 現量(현량)이
성립하고, 단어나 문장에 대해서는 比量(비량)이 성립한다. 이처럼 現量(현량)과 比量(비량)은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에 한 마음에서 한꺼번에 얻어질 수
있다.
원측은 이 두 견해에 관하여 특별한 논평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쪽의 견해를 각자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자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 인식작용의 主와 客
사분을 주관과 객관의 측면에서 고찰하면, 상분은 오직 객관[所緣(소연)]이라 할 수 있고,
나머지는 주관[能緣(능연)]이 될 수도 있고 객관이 될 수도 있다. 견분은 상분에 대해서는 主(주)이지만, 자증분에 대해서는 客(객)이다. 자증분과
증자증분은 서로 번갈아 主(주)가 되고 客(객)이 된다.
그러나 자증분이 상분을 客(객)으로 하거나, 증자증분이 견분을 客(객)으로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분은 각각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로 초월해서 관계를 맺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凡夫位(범부위)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작용에 대한 분석이다.
바. 깨달았을 때[淨位]의 인식
깨달았을 때[淨位(정위)]의 사분 상호간의 인식하고[能緣(능연), 主(주)] 인식되는[所緣(소연), 客(객)] 관계에
관하여, 원측은 기존의 네 가지 견해를 제시한다. 그것은
첫째, 견분이 나머지 삼분에 대해서만 능연이 된다고 하는 견해[見遍緣三(견편연삼)],
둘째, 견분이 사분을 모두 대상으로 한다는 견해[見遍緣四(견편연사)],
셋째, 견분
· 자증분 · 증자증분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삼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견해[三通緣三(삼통연삼)], 그리고
넷째, 견분
· 자증분 · 증자증분의 삼분이 사분을 모두 대상으로 삼느나는 견해[三通緣四(삼통연사)]이다.
원측은 이
가운데 네 번째 견해에 동의한다.
원측에 의하면 상분은 인식하는 작용이 없기 때문에 견분이나 다른 이분을 대상으로 하지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삼분은 모두 견분과 같은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다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측은
깨달은 상태에서의 인식은 절대무분별의 직관이라고 본다. 따라서 淨位(정위)의 인식주관(견분
· 자증분 · 증자증분)은 미혹할 때와 같이 정해진
각각의 대상만을 인식하지 않는다.
이 경우 인식주관은 인식되는 것(상분
· 견분 · 자증분 · 증자증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원측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분이 어떻게 변해서 주객의 관계를 형성하는가라는 문제를 상세히 고찰한다.
그리하여 위의
첫
번째 견해에 두 가지 _見緣相變 緣餘不燮(견연상변 연여불섭)
· 緣三皆變(연삼개변)
두 번째 견해에는 세 가지
_見緣相變 緣餘不變(견연상변
연여불변) · 緣三變 緣見不變(연삼변
연견불변) · 緣四皆變(연사개변)
세 번째
견해에 네 가지 _見緣相變 餘皆不變(견연상변
여개불변) · 見緣三變 餘皆不變(견연삼변 여개불변)
· 三緣相變 緣餘不變(삼연상변 연여불변)
· 三緣三變(삼연삼변)
네 번째 견해에 여섯 가지 경우
(見緣相變
餘皆不變(견연상변
여개불변) · 見緣三變 餘皆不變(견연삼변 여개불변)
· 見緣四變 餘皆不變(견연사변 여개불변)
· 三緣相變 緣餘不變(삼연상변
연여불변) · 三緣三變 緣自不變(삼연삼변 연자불변)
· 三緣四變(삼연사변)를
상정하여 설명한다.
원측의 학설은 충실히
따르는 [도증]은 이러한 열 다섯 가지 경우 가운데서 13번째 견해에 찬성한다. 즉 견분
· 자증분 · 증자증분이 상분을 인식하는 경우에만
상분의 영상이 변하고, 나머지를 대상으로 할 때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분을 제외한 나머지 삼분 사이의 상호인식은 모두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인 것이기 때문에, 대상이 되는 영상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규기의 제자 혜소는 원측이 이와 같이 제시한
열 다섯 가지 해석이 하나도 옳은 것이 없다고 하여 일일이 반박한다.
凡夫位(범부위;
染位:염위)의 인식은 논리적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겠으나, 佛果位(불과위:
淨位:정위)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의 견해가 옳은지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淨位(정위)의 사분 상호간의 관계에 관해서 원측이 정리해 놓은 四釋十五類(사석십오류)의
분류는, 중국이나 일본의 유식학자들에게 누누이 인용되어 하나의 좌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이만큼 상세하게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5. 맺는 말
원측은 불교의 모든 교설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본다. 인식의
문제에 관한 유식불교의 교설들에 대해서도 원측은 역시 방편설로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측은
유식의 의미에 대한 신
· 구 유식의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원측은 각각의 견해와 입장이 갖는 나름대로의 의미와 역할을 각각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이원성을 벗어난 무분별지를 추구하는 구유식의 견해에도 동의를 표하고,
신유식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인식의 구조에 대한 혜명작업에도 동참하여 상세히 분석한다.
규기의 제자인 혜소의 저술이나 일본
유식종의 저술 속에서 원측의 견해가 단편적으로나마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보면, 원측이 사분설만을 正義(정의)라고 생각하는 법상종 사람들 못지
않게 치밀한 분석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원측은 불교 안팎의 사상을 막론하고,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실히 이해하고자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인식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문제이건, 원측이 정리하고
분석한 내용은 후학들이 집고 넘어가야 하는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위치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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