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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레버 링 세계종교사의 불교서술상
특징
트레버 링의 [세계종교사]는 각 종교간의 전파과정이나 확장과정에 대해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앞에서 본 7개의 시기구분에 따라 불교를 배열하면서, 다른 종교와 함께 불교의
사적 전개를 평이하게 기술하고 있다.
불교의 전개과정에 대한 링의 설명은 타종교를 같은 시기에 배열하고 그 결론 부분에서 그 양상을
비교·해석한다는 사실 이외에 큰 특징은 없다. 그러나
불교의 발생기에 대한 링의 서술은 매우 독특하여 우리의 주의를 요하며, 그의 예언자관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트레버 링 류의 세계종교사가 지닐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알 수 있다.
트레버 링의 [세계종교사]에서 나타나는 불교에 대한 기술 중 가장 독특한 것은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붓다를
예언자(prophet)의 하나로서 묘사하는 점이다.
트레버 링의 [세계종교사]에서 불교의 발생기는 앞에서 본 세계종교사의 7단계
중에서 두번째 시대에 해당된다. 링에 의하면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카리스마적인 종교적 인물이 풍부하게 등장한 시기이다.
이
점은 많은 사가들과 종교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지적되어 온 바이다. 그러나 링은 이 시대에 나타난 많은 위대한 종교적 인물들을
예언자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예언자뿐만 아니라 이란의 짜라투스트라, 중국의 노자
· 장자, 인도의 붓다까지도
그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링이 생각하는 '예언자'의 개념의 독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링에 의하면 예언의 돌출(prophetic
breakthrough)이란 "인간 조건과 상황에 대한 어떤 새로운 통찰이 한 특별한 개인에 의해 수용되는 것"이며, 예언자란 "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동 시대인들에게 설하여 그것을 공유하려 한 사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짜라투스트라나 붓다는 예언자적 인물이다.
링에 의하면 짜라투스트라는 우주와 인간의 상황을 조건지우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의 영적 원리로서 새로운 교리를 창안하였고, 붓다는 업(samsara)과 윤회(rebirth)를 지속시키는 개별적
영혼이 있다는 이론에 전면적인 도전을 하여 전혀 새로운 이론, 즉 무아설(無我說)을 구성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트레버 링은 붓다를 단지 覺者(각자)로서가 아니라 왜 예언자라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붓다가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진리를 자신만
간직하지 않고 동시대인들에게 알림으로써 그들과 공유하려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링에 의하면 모든 예언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새로운 통찰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강요하는,
그들 자신보다도 더 큰 힘(a power) 또는 어떤 존재(a being)를
감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힘 또는 존재의 구속력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바를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낀 자들이다.
바로 이 점이 붓다를 예언자로서 주목하게 하는 요소이다.
링은 이러한 점이 "붓다의 경우 간과되어 온 점"이라고 지적하면서, "붓다가
'法(Dhamma)'을 설파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전승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그 구속감은
결국 '법'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며, 그(붓다)는 그 '법'의 역사적 대리자이며 대변인"이었다고 규정한다.
트레버 링의 종교사 서술은 한 종교사 단계 내에서 여러 종교들을 동시에 비교적으로 서술하며 왕래하고 있으며, 이것은 위의 설명과
같이 불교에 대한 설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불교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타종교의 전개과정과
비교하며 서술함으로써, 세계종교사 전체의 흐름을 나름대로 일관적으로 제시함과 아울러 불교의 타종교에 대한 관계를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서술방식을 니니안 스마트의 것과 비교해보면 그 서술방식의 특성이 선명히 부각된다. 스마트는 불교를 나름대로 구조와 기능,
의미를 지닌, 한 독립적 세계관으로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는 내적인 완결구조를 지니고 있는 독립체로서 취급되며, 그 독립체
안에서의 여러 부분들의 상호관계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반면에 트레버 링은 불교를 단독적 실체로 보지 않고 어느 정도 한
시대의 동일한 정신적 구조를 공유하는 발전물로서 바라본다. 따라서 불교를 폐쇄적으로 다루지 않고 시간적·공간적으로 열린 공간 위에서
동시에 종 · 횡으로 배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불교는 세계정신사의 흐름 속에서 한 획을 담당하는 역동성의 일부로서
드러난다. 세계종교사를 이처럼 시기적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 각 단계별 종교사의 시대적 특성을 찾아보려 한 링의 시도는 세계종교사에서 매우
고무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단순한 병렬적 기술이나 제 종교들간의 테마간의 상응성 정도의 비교의 스케일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어떠한 의미에서건 나름대로 하나의 통일적 관점에서 '종교사 전체'의 역사적 전개를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역사적
비교방법론에 의하여, 종교들은 역사적 단절 속에서 記述(기술)될 때에는 결여되었던 상호이해와 비교가능성에 대한 보다 풍부한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그러나 링에게서 지적될 수 있는 하나의 문제점은, 한 사람의 연구자가 이 광범위한 세계종교사 전체를 마스터하고 체계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즉 아무리 한 연구자가 자료를 공평하게 다룬다 할지라도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료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취사선택하고 배열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우려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로서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트레버링의 '예언자' 개념을 지적할 수 있다.
트레버 링이
붓다를 '예언자'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래도 동양전통의 연구자에게는 생경하게 느껴진다. 예언자라는 개념은 보통 이스라엘 종교전통이나 그
뒤를 이어 계승, 발전시킨 유일신 종교에서 주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아무리 서술상의 일관성과 체계화와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종교에 공통적으로 사용되기에는 부적절한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신이나 초월적 존재를 배후에 두고 그의 뜻을 대리하는 예언자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 얻은 통찰[法]을 설하는 覺者(각자)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며, 그보다 더한 이유는 그것이 동양종교에서는
스스로를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과연 흔히 인격적으로 묘사되는 신적 존재와 인격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우주의 진리, 즉 '법'이 예언자 배후의 실재로서 동등하게 이해될 수 있는가
? 해석학적 차원에서 볼 때, 상이한 전통들의 비교연구에는
남의 전통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링이 사용한 예언자라는 개념은 서구의 종교전통에서 추출된
용어로서 불교나 동양종교에 무리하게 적용된 한 예는 아닐까 ?
이런 면에서 한 연구자가 세계적 관점에서 세계종교사를 서술한다면 보다 객관적 시각이나 안목, 나아가 용어의 개발에 신중해야
한다.
종교사를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서술한 세계종교사로서는 트레버 링의 [세계종교사] 외에 존 카모디의 [종교경험의
해석:세계관(Interpreting the Religious Experience: A Worldview)]이 있다.
이 책은 카모디가
에릭 훼글린(Eric Voegelin)이라는 독일의 역사철학자의 역사관을 적용시켜 세계종교사를 분석한 글이다. 카모디는 일종의
도식화를 시도하여 세계종교사를 인간의 의식상태의 분화(differentiation)와 발전의 단계로 설명하였다.
에릭 훼글린의 역사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삶은 의식(conciousness)의 네 분화단계를 통해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①
우주론적 신화 (cosmological myth), ② 계시 (revelation),
③ 철학
(philosophy), ④
근대성 (modernity) 이다.
이 의식의 네 단계는 인간의 실재의 질서에 대한 인식이 분화와 발전을 통하여 각각의 다른 인식틀을
전개시킨 것이다. 훼글린에 의하면 종교는 이 네 단계의 핵심에 위치하는데, 그것은 종교가 인간 삶의 궁극적 구조와 가치를 다루기
때문이다.
불교의 창시자 붓다는 이 네 단계 중 철학의 단계에 속한 인물로서 즉 철학자로서 분류된다.
이 저작에서도 링에게서 나타났던 문제들이 동일하게 지적될 수 있다.
예컨대 불교는 우주론적 신화로부터 완전히 분화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반면, 서구의 유일신 종교들은 계시를 통하여 우주론적 신화로부터 구별되는 분화를 이루어 사실상
불교보다 의식의 분화상태가 더욱 발전된 것으로 보는 시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다시 한 번, 서구학자에 의해 종교사가
기술될 경우 동양종교가 이해되는 정도와, 하나의 일관된 역사철학을 전제한 후 그 틀에 따라서 종교를 설명할 경우 발생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Ⅳ. 현상학적 유형론에서의 불교 : M.엘리아데를 중심으로
1. 현상학적 유형론(phenomenological
typology)과 M.엘리아데의 방법론
앞에서 소개된 경우와는 달리 개별 종교들의 집합으로서의 병렬적 종교사를 지양하고, 그
종교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와 주제를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로서 종교
현상학이 있다.
이러한 종교현상학에서 중요한 연구방법론 중
하나는 현상학적 유형론이다.
현상학적 유형론은 종교전통, 종교현상, 종교적 주제, 종교적 형태 등을 공평하게 비교 또는 대조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본래 비교종교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으나 이러한 방법이 점차 분화되어 독립적인 종교연구 방법을 이루게 된
것이다.
현상학적 유형론을 가지고 세계종교의 사상사를 시도한 대표적 인물은 '엘리아데'이다.
엘리아데는 인간이 聖을 지각하는 양태인 종교
안에는 비교가능한 기본적인 구조와 유형(structures & patterns)이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이들 구조와
유형은 聖顯(성현; hierophany), 象徵(상징;
symbols), 原型(원형; archetype)의 형상을 취하기 때문에 종교자료들 속에서 이들을
비교하고 밝혀내는 것이 종교사가의 임무이다.
따라서 '엘리아데'에 의하면 세계종교사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순수한
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사료들이 일정한 '구조'에 의해 읽혀지고 배열되며 '해석'되어야만 완성되는 것이다.
엘리아데가 저술한 [종교사상사 (The History of Religious Ideas)]는 이러한 엘리아데의 기본적 관심이
세계종교라는 구체적 역사적 사실들과 만나서 이루어낸 성과물로서, 종교사에 나타난 성의 현현을 연대기적 순서(chronological
order)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 저술이 그의 현상학적 유형론의 방법론에 의해 구성된 세계종교사이기는 하지만 그의 독특한 방법론에
대한 직접적 설명은 없다. 그의 여러 저서들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그의 종교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엘리아데의 방법론에서 핵심적인 개념 중의 하나는 '성과 속의 변증법(dialectic)'이다.
엘리아데는 무엇보다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us)의 경험에 공감적으로 참여하려는 노력으로서 성의 불가환원성(irreducibility)을
주장하였으며, 성속의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성현(sacred manifestation)의 의도를 파악하였고, 종교적 상징에 대한
구조적 해석학을 통하여 성현의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종교적 경험을 한 사람은 무엇인가가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나타나 그에게 자신을 보여주었다고 믿게 된다. 그
어딘가 다른 곳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성(the sacred)'이며, 성이 그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속(the
profane)'이다.
이렇게 성이 속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성현'이라고 한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종교사는
- 가장 초보적인
것으로부터 가장 발달된 것으로까지 - 수많은 중요한 성현들의 역사이다. 엘리아데에게서 종교는 신이나 유령과 같은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반드시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의 경험을 가리킨다.
성과 속은 이 세계에서의 두 가지 존재방식으로서 역사과정 속에서 인간에
의해 가정된 두 가지 실존적 상황이며, 성은 '힘', '절대타자', '궁극적 실재'로서 매우 고유(sui generis)한 무엇으로
경험된다.
둘째, 종교는 인간의 역사 내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구조적 요소이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聖은 의식의 역사 안에서의 한 단계가 아니라 의식의 구조 안에 있는 하나의 요소"이며 "인간은 '종교적'
존재"이다. 엘리아데의 이러한 언급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종교적 인간'임을 암시하고 있다.
셋째, 엘리아데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은 자료의 광범성과 다양성이 있지만 그 안에는 일관된 내적인 공통구조가 있다.
종교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이와 같은 종교적 현상의 근본적 통일성(fundamental unity)과 그들의 고갈되지 않는
새로움(newness)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엘리아데의 현상학적 유형화 방법론은 종교의 근본적 구조와 원형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현과 상징들의 기본 유형을 밝히려고 한 노력이라고 하겠다.
2.엘리아데 종교사상사의 불교서술상
특징
[종교사상사]는 전체 3권(영역본) 3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직접적으로
인도 및 불교에 대해 다루는 항목은 6개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책의 불교에 대한 기술
- 여타의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은 위에서
살펴본 엘리아데의 '종교관'과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위에서 설명한 현상학적 유형화 방법론이 '명시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현상학적 유형화 방법론과 불교에 대한 그의 설명 사이의 어떤 논리적 연관을 찾으려 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방법론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관'에 따라 엘리아데의 불교사 서술은 몇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먼저, 엘리아데는 세계종교에서 차지하는 불교의 독특성이 붓다라는 인물의 독특한 지위에 있다고 규정한다. 엘리아데는 물론 붓다가
내세운 사상이 고대 인도사상에서 볼 때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그 불교의 혁신적 사상이 사성제나 무아, 열반이라는 교리에
있다고 보는 점에서 그는 일반 종교사가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붓다의 지위에 대한 설명에서는 일반 종교사가들과 사뭇 다르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불교는 그 종교의 창시자가 스스로를 가리켜 신의 예언자라거나 또는 그(신)의 使者(사자)라고 주장하지 않은, 또한 최고
존재로서의 신관념을 거부한 유일한 종교"이다.
그대신 붓다는 자기가 '깨달은 사람(buddha)'이라고 선언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여 신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구세주(savior)'의 위치로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붓다는 기독교나 이슬람의
교조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엘리아데의 불교에 대한 기술에서 특징적인 것으로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엘리아데의 불교서술에서 끊임없이 그의
'고대존재론(archaic ontology)'이 해석의 범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엘리아데의 [종교사상사]의 불교에 대한
서술의 부분을 살펴보면 그의 '고대존재론'이 불교의 해석의 틀로 사용되고 있는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붓다는 브라만의 우주론, 상키야나 요가학파의 방법론과 기술에 대해 반대하면서, 세계가 신이나 조물주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설을 비판했다.
붓다는 오히려 세계가 인간의 선 · 악의 행위에 의해 지속적으로 창조된다고 보았으며, 무지와 죄가 증가될
때에는 인간의 생명만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소모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우주의 창조와 진행의 원천을 業力으로 이해한
붓다의 우주론에서 엘리아데는 붓다와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의 유사성 내지는 동일성을 발견하였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붓다의 생각이
범인도적인 것이었지만, 동시에 고대인들의 일반적 세계관과 동일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고대존재론'을 불교를 설명하는 중요한 범주로
사용하고 있다.
(붓다와 같은) 이러한 생각은 범인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가 점진적으로 쇠퇴한다고 생각하여 정기적인 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고대의 관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전통적 종교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종교적 삶의 모델을 과거로부터 구한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고대인의 행위의
대부분은 시간의 태초에 신이나 신화적 인물에 의하여 행해진 원초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에게서 하나의 행위는 초월적인
모델, 원형을 반복하는 한에 있어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 반복의 목적은 행위의 규범성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고 거기에 실재론적인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고대존재론'이라는 범주로 표현되는 이러한 내용은 붓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엘리아데는 붓다와 고대인들의 사고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붓다는 자신이 독창적 교리를 제시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경우에 '고대인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즉 그의 교리는 과거의 '성인들'과 '완전하게 깨달은 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무시간적인 교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메시지의 '영원한' 진리와 보편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길이었다.
그러나 한편 엘리아데는 불교가 고대인들의 종교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엘리아데는 불교가 고대종교사상이 가진
일반적 우주론의 구조를 넘어서는 계기를 지니고 있다고 기술함으로써 불교와 고대종교사상과의 차별성을 논한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붓다는
자신이 모든 우주의 순환체계[輪廻(윤회)]로부터 벗어났음을 공표한 순간, 고대인들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결별하였다
왜냐하면 우주의
순환체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 우주 안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자 했던 모든 고대인들의 종교적 열망에 비추어볼 때 고대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붓다가 자신이 생존의 굴레[輪廻(윤회), samsara]를 깨뜨렸다는 주장을 하면서 사용한 '깨어진 알(broken egg)'의 비유는
그가 우주와 순환적 시간(cyclical times)을 초월했음을 뜻한다. ···
이것은 모든 조건지워진 세계의 無化를 말한다.
우리가
인도사상에서의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전통적, 고대인의 사고에서의) '우주
- 집 - 인간의 몸'의 상동관계(homology)적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붓다에 의해서 제시된 목표의 혁명적 새로움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붓다는 '안정된 주거 장소에 자신의 삶의
위치를 고정하고자 하는' (즉, 하나의 완전한 우주 안에 한 실존적 상황을 가정하는) 고대인들의 이상을, 즉 그와 동시대인이었던 영적
엘리트들의 이상을 반대하였다.
즉 그는 세상의 무화와 모든 '조건지워진' 상황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엘리아데의 불교서술에서 보이는 이와 같이 서로 상반되는 입장의 논리적 일관성을 따지는 문제는 우리의 일차적 관심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엘리아데의 불교서술에서 불교가 - 고대의 종교사상에 따르는 것이든, 아니면 그것을 넘어서는 종교이든
- 고대의 종교적 세계관에
비추어 해석되고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그의 불교서술에서 '고대존재론'을 중요한 범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 엘리아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 대한 이러한 설명방법에는 독특성만큼이나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엘리아데에 대한 가장 빈번한 비판은 그가
자신의 "'고대 존재론'을 위해 자료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개인, 전통은 소홀하게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불교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아데는 불교를 논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대인들의 종교성과의
관련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엘리아데에게는 불교 자체의 전통이나 역사, 특수성보다는 고대인의 종교성이란 범주가 보다 중요하며,
불교는 고대인의 종교성의 한 변형적 양태로서 확인될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엘리아데가 특별한 개별 종교전통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종교상징이 인간의 의식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보는 엘리아데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엘리아데의 이러한 입장은 단순화의 오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스마트는
"어떤 항구적인 것을 찾지 않고서는 종교사가 특수한 것들의 밀림 속으로 추락하게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인간 정신 안에 있는 어떤
지속적인 요소를 찾는 방법론은 필연적으로 유기적 · 사회적 맥락의 의미에 대한 소홀함을 수반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종교의 비교연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인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는 종교를 인간 안에 있는 한 구조적 요소(a structural element in man)라고 봄으로써,
불교에 대한 연구의 방향에서도 불교의 특수성보다는 고대종교와의 유사성 또는 모든 종교의 보편적 구조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엘리아데의 종교사에서 불교는 불교만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해내는 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엘리아데 자신의
독특한 현상학적 유형화의 방법론때문에 야기되는 필연적인 문제이다.
휄링의 지적처럼, 엘리아데는 "인간이 처음으로 우주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했을 때부터 중요한 종교적 태도는 이미 존재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철기시대인과 현대인 사이에는 차이가
없고, 침례나 십자가도 역사적 사실 그대로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반복하는 종교적 상징의 한 양태로서 중요할 뿐"이며 "그것의
본질적 속성이나 의미는 같다"고 본다. 따라서 "현상학적 유형론에서는 어느 것의 역사적 새로움은 중요하지 않고", "역사적 표현과
맥락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상과 같이 엘리아데의 현상학적 유형화의 방법론에 입각한 불교서술은 불교의 역사적 변천과 특성의 발견에는 매우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약점은 동시에 다른 장점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즉 하나의 방법론은 그 특성상 이중적 차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상학적 유형화의 방법론은 종교 일반과의 관련 속에서 불교에 보다 풍부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서술방법론은
세계종교사 속에서 불교에 대한 공시적(共時的), 구조적(構造的) 연구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동시에 또한 한계를 지닌
방법론이라고 하겠다.
Ⅴ. 맺음말
대부분의 세계종교사 저서 속에서 불교의 특성에 대한 기술은 교조인 붓다라는 인물의
독특성과 연결되고 있다. 붓다는 다른 많은 종교의 교조들과는 달리 神的(신적) 존재의 예언자나 대리자로서 자신을 밝히지 않았고
오히려 진리의
覺者(각자)로서 자신을 선언했는데, 그것은 세계종교사에서 볼 때 여타의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매우 중요한 불교의 독특성의 하나로서 파악되고
있다.
또 붓다가 제시한 진리의 길은 인도사상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종교사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혁명적 사상이었고, 그 사상의 중심적
내용은 四聖諦(사성체)와 無我(무아), 緣起(연기), 跡槃(적반)의 교리에 압축되어 있다고 대부분의 세계종교사들은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세계종교사 저서들은 대부분 서구학자들의 저작이며 각각의 서술방법론에 의해 불교가 기술된 내용에 차별성이 있음도
발견된다. 그것은 종교사 저자들이 여러 종교를 비교하며 서술하는 가운데 일정 정도의 해석의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으며,
표면적이든 암묵적이든간에 나름대로의 종교사관과 종교정의가 내포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붓다라는 인물의
독특성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데에서도 여러 세계종교사 저자들의 관점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그 내용은 매우 대조적이다.
트레버 링에 의하면
붓다는 짜라투스트라나 예레미아, 노자, 장자와 같은 인물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예언자'이며,
엘리아데에 의하면 붓다는
결코 신의 예언자로서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으로서 독특성이 있으며 아울러 '고대인들의 종교적 세계관을 계승한 사람'이며,
카모디에
의하면 붓다는 그 이전의 신화적 세계관으로부터 새로운 세계관을 전개시킨 '철학자'이다.
이러한 차이는 각 저자들이 지닌 종교정의와
종교사관의 차이에 의해 야기되는 것으로서, 세계종교사의 서술방법론들에서의 종교정의와 종교사관, 그리고 그들이 지닌 문제점들은 앞에서
지적하였다.
앞의 본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서구학자들에 의해 집필된 세계종교사에서의 불교에 대한 기술은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시각과 용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간에 하나의 편견들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불교의 입장에서 일목요연하게 세계종교사를 기술하려는 노력은 지금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어오지 않았다고 보인다.
불교가 자신을
세계종교로서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편적 종교이론으로 설명해야 하는 '보편화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편화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불교에 적합한 그 나름의 종교정의와 종교사관, 그리고 '세계종교사'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어야 하며, 나아가 불교 나름대로 자신의 시각을 바탕으로 세계종교사 서술을 시도해보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시각을 절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상대화', '관점의 다원주의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불교는 서구의 시각으로부터 자신을 옹호하는 수동적 입장을 벗어나,
오히려 능동적으로 타종교와 인류의
종교사 전체의 의미와 의도를 해석하는 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바와 같이 현대는
종교다원주의시대이다.
해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연구자가 서 있는 문화적 배경, 그리고 종교적 전이해는 그의 세계종교사 기술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현대의 종교다원주의는 단지 개별 종교전통들의 다원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해석상의 관점의 다원화까지를
의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 때, 불교의 시각에서 본 세계종교사의 구성은 세계의 종교사 이해에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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