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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御筆·御製碑文奉安 願堂
(어필·어제비문봉안
원당)
乾鳳寺(건봉사)는 新羅(신라) 法興王(뻡흥왕) 7년(520) 阿道和尙(아도화상)이 금강산에 세운 古刹로 조선시대 世祖(세조)
· 睿宗(예종) · 孝宗(효종) · 英祖(영조)
· 高宗(고종)에 걸쳐 누대로 원당이
설립된 名山大刹이다. 이러한 건봉사의 事蹟(사적)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_世祖 11년(1465): 王이 직접 행차하여 願堂을 정하고, 御室閣(어실각)을 세우고, 田畓(전답) 및 親製親筆(친제친필)의 同參文(동참문)을
하사함.
◎_睿宗 원년(1469): 王의 敎旨로 願堂을 정하고 요役(요역)을 면해 줌.
◎_成宗 원년(1470): 王이 효령대군
· 신숙주 · 한명회 등을 파견하여 奴婢(노비)와 鹽盆(염분) 등을 하사하고 사방 10里로 寺山을
정함.
◎_明宗 7년(1552): 王이 敎旨로 畓(답) 10石落(석락)을 하사함.
◎_宣祖 35년(1602): 懿仁王后(의인왕후)가 復戶(복호) 5
結(결)을 하사함.
◎_孝宗 원년(1650): 王의 敎旨로 願堂을 정하고 御室閣(어실각)을 重建(중건)함.
◎_肅宗 9년(1683): 明聖王后(명성왕후)가 佛帳(불장)과 卓衣(탁의:
가사) 및 千金을 하사하여 불상을 改金(개금)함.
◎_景宗 4년(1724): 明聖王后가 千金을 하사함.
◎_英祖 30년(1754): 貞聖王后(정성왕후)가 尙宮(상궁)을 보내어 八相殿(팔상전)을 짓고, 願堂으로 정함. 또 王이 肅宗(숙종)의 御製折檻圖(어제절함도)와 御筆書(어필서)를
하사하여 御室閣(어실각)에 봉안하고 요役(요역)을 免(면)해 줌.
◎_英祖 52년(1776): 貞純王后가 國齋(국재)를 設함.
◎_正祖 12년(1788): 本郡 군수가 王의 허락을 얻어 進貢(진공)을 혁파함.
◎_正祖 20년(1796): 강원도 순찰사가 御室閣(어실각)을 重修(중수)함.
◎_純祖 4년(1804): 純元王后(순원왕후)가 천금과 향로 등을 하사함.
◎_純祖 5년(1805): 순원왕후가 國齋(국재)를 설함.
◎_純祖 15년(1815): 본군 군수가 族徵(족징)의 폐단을 혁파하고, 紙役(지역)을 감함.
◎_純祖 20년(1820): 孝懿王后(효의왕후)가 平床(평상)을 하사하여 어각에 둠.
◎_純祖 22년(1822): 본군 군수가 紙役(지역) 등을 경감하여 줌.
◎_純祖 26년(1826): 본군 군수가 雜役(잡역)을 감해 줌.
◎_憲宗 13년(1847): 空名帖(공명첩) 300장 기증받음.
◎_憲宗 14년(1848): 純元王后가 금품과 汁物(즙물:
잿물)을 하사하여 祈禱(기도)를 행함.
◎_哲宗 8년(1857): 본군 군수가 자신의 돈으로 남한산성 義僧防番錢(의승방번전)을 대신 변제해 줌.
◎_哲宗 14년(1863): 본군 군수가 紙役을 혁파함.
◎_高宗 15영(1878): 산불로 3,183間이 모두 불탐. 공명첩 5백 장 받음.
◎_高宗 16년(1879): 大雄殿(대웅전)
· 御室閣(어실각) · 四聖殿(사성전) 등을 중건하였으며, 대왕대비로부터 만금을 하사받음. 三殿(삼전) 탄신을 위하여
원당으로 정하고 요역을 혁파함.
◎_高宗 17년(1880): 대왕대비가 천금을 하사함.
◎_高宗 28년(1891): 神貞王后(신정왕후)의 小祥齋(소상재)를 설함.
◎_光武 원년(1897): 明成皇后(명성황후)의 大祥齋(대상재)를 설함.
사적의 내용으로 보아 건봉사는 5代朝에 걸쳐 원당이 설치되었으며, 세조의 어제어필과 숙종의 어제절감도 및 어필서를 봉안하는
명산대찰로서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해 영광을 누려 왔다. 왕실 및 지방관으로부터 僧役(승역)의 감·면은 물론 경제적 지원도 받고 있다.
그러나 원당사찰이라고 해서 宮納(궁납)과 官納(관납)의 승역이 모두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원이 원당으로 지정되면 官役(관역)과 國役(국역)을 동시에 져야
한다. 다만 왕실이나 국가권력에 의해 국역에서 관납만큼 혹은 그 이상의 역을 탕감해 주고 있는데
일정하지 않은 것 같다.
왕실의
관심(비호)과 지방관의 침학은 반비례하므로 때로는 寺院經濟(사원경제)가 盛(성)하기도 하고 衰(쇠)하기도 하는 것이다.
건봉사가 비록 5대조에 걸쳐
원찰로서의 특혜를 누려 왔다고는 하지만 왕실의 관심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의해 起伏(기복)이 있게 마련이다.
열성조의 어필을 봉안한 건봉사의 僧弊(승폐)에 대한 전교에서 영조는,
이 절은 중요함이 여느 절과 다르다. 이미 열성조의 어필을 봉안하였으니, 지금에 미쳐 소생시키고 구제하는 일을 잠시도 늦출 수
없다. 이른바 宮納(궁납)과 雜費(잡비)가 免稅田(면세전)에서 생산되는 것에 비하여 10배뿐만이 아니라 하니, 이미 그런 말을 듣고서 어찌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특별히 아울러 탕감하라. 그리고 해당 宮에서 만일 다른 방도로 수탈하는 폐단이 있거든 巡營(순영)에 그 사실을 보고하라.
宮納(궁납)의
폐단이 없어지더라도 官納의 폐단이 또 생긴다면 바로잡아 개혁한 뜻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이는 도백이 살피고 申飭(신칙)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라고 하였다.
즉 어필봉안 원찰이면서도 궁납이 관납보다 더 혹독하다는 것은 영조 30년 건봉사에 숙종의 어필을 봉안한 후
정순왕후가 영조 말년에 왕의 환후를 위해 국재를 개최하기도 하였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御筆奉安(어필봉안)이 원찰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왕이 昇遐(승하)하면 선왕의 글인 어제를 찬집 간행하고 어필을
蒐輯 模刊(수집 모간)하는 등 일련의 조치가 시행됨과 아울러 그의 뜻을 기리는 尊閣(존각)이 설치되고
선왕의 자취들은 엄격한 의식을 통해 존각에 봉안되어
국가의 권위와 선왕의 위업을 기리는 상징물이 되었다.
또한 어필은 곳곳의 봉안처에 분봉되었으며, 頒賜(반사)의 과정을 통해 민간으로 퍼져
나가기도 하였던 것이다.(↓)
참고
>'朝鮮王朝의
列聖御筆(열성어필) 刊行',p.147; 그리고 御筆(어필)에는 眞蹟(진적)
· 刻本(각본) · 懸板(현판) · 金石文의
종류가 있는데, 眞蹟은 唯一本(유일본)이므로 刻本처럼 널리 보급할
수 없으며 시대가 올라갈수록 드물었으므로 어필을 길이 보존하는 방법은
模刻(모각)이었다고 한다.
숙종조에 유점사 畵像 安置(화상 안치)에 대해서 논의하는 가운데,
갑술년(숙종 20년) 이전에는 관료들이 일치하여 직무에 힘쓰고 서로 공경하고 합심하라는 뜻으로 御製詩(어제시)를 내려 여러 官司(관사)의 벽에다
써서 붙였는데, 그중에 '여러 간사한 무리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말이 있어 지금 신하들이 모두 황공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어필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며 대단한 권력으로 상징되고 있다.
즉 어필봉안 자체를 왕실의 비호와
권력의 배경으로 여겼던 것이다. 관청의 경우도 이러한데 개인이나 사원의 경우는 더 큰 광영이며 恩典(은전)이라 여겼을 것이다.
安邊(안변) 釋王寺(석왕사)는 御製碑文(어제비문)이 있는 太祖 潛邸(잠저) 때부터 원찰이었다. 영조가 석왕사에 비석을 세울 것을 명하고
하교하기를,
석왕사 고적은 國史에도 실려 있는데 국초에는 御筆 板刻(어필
판각)이 봉안되어 있었고, 肅廟朝(숙묘조: 숙종)와 先廟(선묘: 영조)에는 모두 御製御筆碑文(어제어필비문)이
있었다.
그리고 仁穆大妃(인목대비: 선조 비) 무신년(광해군 즉위년)과 仁元大妃(숙종 비) 무신년(영조 4년), 왕대비(영조 비) 무신년(정조
12년)에 본사를 중수하였는데, 지난번 齋戒(재계)하면서 밤을 지내던 날 앞서 監司(감사)를 지낸 사람에게 들으니 과연 그러하다.
내가 古事를
계승하는 뜻으로 記文(기문)을 지어 비를 세우고자 하는데 비문은 내가 직접 짓겠다.
비각을 짓고 비를 세우는 것은 선왕 때의 가까운 예에
의하여 해당 道로 하여금 마련하게 하고 비문을 내려보내는 즉시 공사를 시작하도록 하라
民弊(민폐)를 끼칠 수 있는 일들은 각별히 경계하고
力役(력역)은 모두 관곡으로 계산하라.
고 하였다. 석왕사는 태조의 원찰로 어필 판각이 봉안되었을 뿐 아니라, 숙종과 영조의 어필이 봉안되어 있는데 정조 자신도 고사에
따라 직접 비문을 지어 비석에 새겨 석왕사에 세우도록 하였다.
정조의 어제비문은 이듬해 봄에 완성되었다.
이와같이 어필의 보관은 목판 및 비석에 새겨 어필각을 지어서 봉안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大妃(대비)들이 60년 주기로 석왕사를 중수한
것이나, 정조가 직접 어제비문을 쓴 것은 비록 고사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나 어필봉안 원찰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필을 원찰에 봉안하게 된 것은 世代가 멀어지고 亂(난)을 겪으면서 다수가 亡散(망산)되므로 돌에 새기거나
拓印(탁인: 탁본) · 粧漢(장한: 표구)하여 나라 안의 명산(명산대찰)에 봉안하여 오래도록 전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어필은 곧 왕이므로 어필을
훼손한다는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으로 여겨 重刑(중형)에 처하였다.
어제비문을 봉안하고 있는 楊州(양주) 檜巖寺(회암사)는 효령대군의 원당으로 王牌(왕패)가 있는 원찰이다. 회암사에는 無學禪師(무학선사)의 부도와 사적비가 있는데
이 비석은 태종의 어제비문이다.
그런데 廣州(광주)의 幼學(유학) 李膺峻(이응준)이 부도와 비석을 파괴하고 사리를 훔친 후 그곳에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묻었다. 이러한 이응준의 비석 파괴 행위는 곧 임금이 지은 글을 훼손한 죄에 해당되므로 死刑(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순조는 "이 일은 참으로 변괴 중에서도 가장 큰 변괴이다. 이 비문이 매우 소중한 것인데도 어려움 없이 손을 댔으니, 그의 안중에
국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도 사형을 감하여 외딴 섬으로 정배하도록 하였다.
이와같이 어필과 어제비문은 국가의 권위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봉안과 관리에 있어서도 매우 엄격하였다.
그리고 어필이
봉안되는 장소로는 그 중요성에 비추어 왕실의 원찰이 적지였다.
그것은 원당에서 이미 열성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명산대찰로서
보호를 받고 있는 상태이므로 그러한 것이다. 어필봉안 원당으로 조금은 독특한 流芳院(유방원)과 萬松院(만송원)의 경우를 살펴보자.
조선후기 대일관계는 임진왜란으로 국교가 단절되었으나 조선과 청국과의 미묘한 외교관계의 틈새를 이용한 일본의 요구로 광해군
1년(1609) 己酉條約(기유조약)을 계기로 재개되었으나, 왜인들의 통행과 활동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에 공식적인
書契(서계)와 禮單(예단)인 別幅(별폭)을 바치고 回答書契(회답서계)와 回賜禮單(회사예단)을 받아 갔다. 이러한 회사예단 가운데 조선 왕의 어필을 요구하게 되고 그
어필봉안이라는 명목으로 원당을 짓고, 香火(향화)를 위해 조선으로부터 더 많은 예물을 요구하고 있다.
유방원은 대마도주의 아들이 자신의 父를 위해 설립한 것으로, 부가 죽자 조선으로부터 받은 賻儀(부의)로 堂(원당)을 짓고 扁額(편액)을
요구하여 '유방원'이라는 세 글자를 써 주자 원당의 향화 명목으로 물자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명분은 임진왜란 후 조선과 일본이
강화할 때 대마도주로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만송원도 바로 이러한 연유로 세워진 것이다.
효종조에 일본 關白(관백)이 원당을 새로 짓고 어필 얻기를 청하자,
대신들이 先朝王(선조왕:
인조)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허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선조왕 때는 '日光淨界彰孝道碑(일광정계창효도비)'라는 여덟 자를 써 주었는데, 이번에는 '靈山法界崇孝淨院(영산법계숭효정원)'이라고 써 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효종은 허락하고 직접 써서 주었다.
이들이 어필을 요구하고 원당을 짓는 것은 향화를 빌미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예물을 받아
내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같이 유방원과 만송원의 어필봉안은 조선의 어필봉안 원당과 성격이 다르다.
다만 관례적이고 의례적인 것이며, 또한 대마도의
열악한 경제에 외교라는 것을 빌미로 그들이 필요한 물자를 요구하기 위해서 설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에 명나라 毅宗(의종)의 어필을 봉안하고 있는데,
효종조 宋時烈(송시열)이 의종의 친필인 '非禮勿動(비예물동)' 4자를 바위에
模刻(모각)하고 그 진본을 萬東祠(만동사) 옆 작은 僧舍(승사)에 봉안하고 그 이름을 '환하게 빛나는 글씨가 있다'는 뜻으로 煥章庵(환장암)이라 한 뒤 승려로 하여금
수호케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해 어필각을 번듯하게 세우지도 못하고, 다만 '한 칸 茅屋(모옥)에서 주나라 昭王(소왕)을 제사지내는
의리'로서 행하고, 환장암에 전지를 하사하여 수호토록 하였다.
비록 환장암이 원당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아니었지만 지난날
명나라와의 관계로 왕실의 관심을 누릴 수 있었다.
3) 胎室 및 封山處로서의 願堂
胎室(태실)과 封山(봉산)은 그 의미상으로 전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나 실제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태실이 있는 산은 봉산으로
지정되어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봉산에 태실이 봉안된다고는 볼 수 없다.
胎室은 王室에서 왕자나 왕녀가 태어나면 그 胎盤(태반)을 봉안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 하여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태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陰宅(음택) 못지않게 風水地理(풍수지리)에 따라 明堂으로 보이는
곳에 태를 안치하였으며, 태실 건립과정에 인적 · 물적 자원이 막대하게 소용되었던 것이다.
또한 "胎封(태봉)은 園陵制(원릉제)와 같은데 산봉우리마다
왕실의 태실이 있는 것은 國俗(국속)을 해치는 것이다" 하여 胎藏(태장)의 禮(예)는 陵(능)
· 園(원)과 같으므로 태실을 봉안하고 주변사찰(혹은 원찰)로 하여금
태실 주인공의 만수무강을 빌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태실이 명산의 봉우리마다 있어 國俗(국속)을 해칠 뿐 아니라, 주위에 禁標(금표)를 세우거나
民田(민전)을 침해하는 등 민폐를 끼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왕자나 왕녀의 태실을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태의 처리가 다음
왕자나 왕녀를 생산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과 왕실의 번영 및 권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왕실에서는 胎藏地(태장지)로 전국의 명산을 중심으로 명당을 물색하였으며, 명산의 명당은 대부분 대찰이 위치하였으므로, 사찰을
'胎室守護之所(태실수호지소)'로서의 기능을 대신하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명산대찰은 이미 왕실 및 궁방의 원당으로 기능하고 있었으므로 태실봉안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원찰이 아닌 사찰에서도 태실을 봉안함으로써 혹시 태실 주인공이 왕이 될 경우 상당한 지위의 변화가
있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왕실과의 인연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찰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실의 관리 측면에서도 일정지역만 禁標(금표)를 세워 관리하기보다 태실이 있는 산 전체를 봉산으로
획정하여 관리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胎封封山(태봉봉산)이다.
封山(봉산)은 기능적 측면에서 왕이나 왕비의 陵墓(능묘)를 보호하고 태를 묻기 위한 태봉봉산과 그 외 黃腸封山(황장봉산), 栗木封山(율목봉산), 香炭封山(향탄봉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원찰이 있는 산은 거의가 봉산으로 획정되고, 이들 봉산 가운데 일부가 태봉봉산으로 왕실의 태를 봉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順天(순천) 松廣寺(송광사)는 태실을 봉안하지는 않았지만 원당사찰로 혹은 封山守護寺刹(봉산수호사찰)로서 기능하였다.
즉 毓祥宮(육상궁) 원당이면서 율목봉산으로
획정되었는데, 이때 받은 절목 가운데 "송광사는 율목봉산으로 왕의 만수를 축원한다" 하여, 봉산처에서도 원당 기능의 하나인 축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20세기 초의 기록이긴 하지만 "나라 안의 명산대찰은 거의 모두 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만세를
축수한다"고 함을 보아 명산대찰의 산은 봉산이고 절은 원당이므로 "봉산은 곧 원당"이라고 할 수 있다.
송광사가 봉산수호사찰이 되면서 명례궁
· 예조 · 관찰사 등으로부터 10여 개에 달하는 完文(완문)과 節目(절목)이 내려져 僧役을 감역하고 寺弊(사폐)를
시정하고 있음은 원당의 지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宣禧宮(선희궁)의 원당인 法住寺(법주사)는 태실이 있는 속리산 일대에 봉산수호사찰로 획정되었으며, 於義宮(어의궁)의 원당인 把溪寺(파계사)는 봉산인 팔공산을
수호하는 사찰이고, 동화사는 翼宗陵(익종릉)의 향탄 공급을 위한 팔공산 일대의 봉산수호사찰로 되었음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봉산과 원당
그리고 태실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4. 結 言
이상에서 조선후기 願堂의 존재형태와 성격을 왕실원당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조선의 불교가 崇儒抑佛(숭유억불)이라는 일관된 정책 아래서 그나마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적극적인 관심과 원당 설립에
起因(기인)하였다.
顯宗(현종)의 僧侶還俗(승려환속)과 尼寺毁撤(니사훼철), 願堂革罷(원당혁파) 등 일련의 배불정책으로 조선후기 불교가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숙종·영조·정조 등의
우호적인 불교관에 의해 약진할 수 있었다.
崇儒抑佛(숭유억불)의 유교적 지배사회에서 僧役은 苦役(고역)이다. 승군으로 力役(력역)에 징발되거나 工匠(공장)으로 각종 役事(역사)에 동원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갖가지 物種(물종)을 제조하여 원당과 지방관청 등에 바쳤다.
이러한 고역이 승려의 환속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역으로 원당의 융성으로 출가자가
늘어나 良役이 줄어드는 폐단도 있었다. 결국 조선의 국가적 입장에서는 還俗(환속)과 出家(출가) 가운데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억제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방관청의 경제적 기여도에 있어 사찰의 비중이 클 뿐 아니라 양역이 부담하기 어려운 것을 승역이 지므로 양자는 서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 조선후기 승려가 苦役에서 免(면)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願堂이다.
그러나 사원이 모두 원당이 될 수는 없으므로 원당을 詐稱(사칭)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원당의 사칭은 關文(관문)을 위조하여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현재 사찰에 보관중인 完文(완문)이나 節目(절목) 등 關文類(관문류)는 그러한 것이
없는지 역사적 史料로서 그 진위 여부를 고증할 필요가 있다.
원당의 존재 형태를 기능적 측면에서 御眞(어진)
· 位牌奉安(위패봉안) 願堂, 御筆(어필) ·
御製碑文奉安(어제비문봉안) 願堂, 胎室(태실) 및 封山處(봉산처)로서의 願堂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어진 · 위패봉안 원당은 院主(원주)의 忌辰齋(기신재)
· 遷度齋(천도재) 및 生辰(생신) · 명절 등에 제사를 지내므로 왕실이나 宮房(궁방)의 적극적인 관심과 비호를 받고
있다.
○ 어필
· 어제비문봉안 원당은 어필봉안처로서 비록 위패는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축수나 기복처로서 기능하였다.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對馬島(대마도)의 流芳院(유방원)과 萬松院(만송원)은 조선왕의 어필을 봉안하였으며, 청주 煥章庵(환장암)은 명나라 毅宗(의종)의 어필을 봉안하고 있다.
○
태실 및 봉산처로서의
원당은 태실과 봉산이 주로 원당을 중심으로 획정되고 있다. 태실과 원당이 있는 산은 명당으로 거의 봉산으로 획정되었으며,
봉산수호사찰로 원찰이 지정되어 祈福(기복)과 祝壽(축수)를 행하고 있다.
이와같이 조선후기 원당은 陵寺(능사)로서 陵(능) 주변에 설립되기도 하였지만 遠地(원지)에 관계없이 전국 어디든지 명산대찰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祈福處(기복처)로서 역할을 하였다.
또 사찰을 창건하여 설립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존의 사찰을 重修(중수)하여 殿(전)이나 堂을 지어 位牌(위패)나 御筆(어필)을
奉安(봉안)하였으며, 원당이 他寺(타사)로 이설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원당은 置(치)
· 廢(폐)가 가능하며, 한 사찰에 列聖祖(열성조)의 원당이 중첩하여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선후기 원당은 寺刹과 願主(王室) 및 國家간의 相互 保險的(보험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 원당의 성격을 구명함에 있어 문제점도 많다. 필자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資料涉獵(자료섭렵)이 부족하였고, 또한 기존의
연구성과가 전무한 관계로 방향설정과 개념정리가 부족하였다.
더구나 조선후기 궁방원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願堂弊(원당폐)의 주류를 이루었던
折受願堂(절수원당)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였다. 조만간 稿(고)를 달리하여 보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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