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생애 :   이야기 (1)

내용 : 1. 석가모니의 탄생   2. 어머니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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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의 탄생 :
석가모니가 태어난 고향 카필라 성은 지금의 네팔 지방에 있는 히말라야 산 남쪽(북인도)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이 석가족은 감자왕(Okkaka)의 후예들로 아랴 인의 석가족(Sakya)이 몇 개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으며, 당시 석가족(釋迦族)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었다고 합니다.
 
카필라국은 이들 나라 중 한 나라였습니다. 약 2,600여년 전(약 B.C. 600~500년경) 북인도에 있던 카필라국은 왕 '정반왕(淨飯王; 슈도다나suddhodana)'과, 왕비인 '마야'부인이 있는 평화롭고 넉넉한 왕국이었다고 합니다.

나야부인 조각상

단지 걱정이 있다면, 왕비인 마야(Maya)부인의 나이가 40세가 넘도록 나라의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는 것이 큰 걱정이라 대를 이을 총명하고 건강한 왕자가 태어나기를 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비인 마야 부인이 꿈속에서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가 동자를 태우고 하늘(도솔천)에서 내려와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몸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게 됩니다.

☜ 흰 코끼리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꿈을 꾸는 마야부인

<조각상: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소장>

놀라 깬 왕비는 왕에게 꿈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라에 유명한 예언가를 불러 꿈을 풀어보게 하니 그 꿈은 나라에 위대한 분이 태어나시리라는 것을 듣게 되어 정반왕과 왕비는 하늘을 날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이를 표현한 내용으로 팔상도(八相圖=八相成道)에서는

도솔래의상

①'도솔래의상(도率來儀相)'으로 표현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_☞

얼마 후 마야(摩耶)왕비는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으며, 해산달(産月)이 되자 왕비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 나라인 코올리(Koli) 성으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마야(摩耶)夫人: 같은 석가족(族)의 호족(豪族)의 딸로 정반왕의 부인이 되었음.- 당시의 풍습]

룸비니(Lumbini) 동산은 온갖 꽃들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동물이 뛰노는 넓은 평원에 위치한 아름다운 동산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많은 시종을 거느린 왕비의 가마행렬이 룸비니동산에 이르자, 꽃이 만발한 무우수(無憂樹)나무의 향기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왕비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향기에 이끌려 무우수나무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무우수나무 옆에 이르자 왕비는 갑자기 산기(産氣)를 느끼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출산 준비를 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왕비가 오른손을 뻗어 무우수나무의 꽃가지를 잡는 순간 오른쪽 옆구리(우협)으로 아기를 낳았다고 합니다.

룸비니 동산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며., 후일 스스로 깨달음을 터득해 

탄생상

인류의 스승이 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실 분인 것이다.

☜_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의 모습

부처님 탄생상(7세기)      
       [네팔 카트만두 국립박물관 소장] _☞

이 날이 음력 4월 8일(초파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전에는 이때 하늘에서 오색 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가 아름다운 소리로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였으며, 구룡(九龍)이 나타나 몸을 닦아 주었다고 전합니다. _[보요경(普曜經)]

또한 왕자는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 갔으며, 그 걸음 걸음 마다에는 연꽃이 피어 올랐으며, 

룸비니 동산

이후 왕자는.,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라는 사자후를 하셨다고 상징적인 표현의 탄생설화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표현은 후일 부처님의 탄생에 대한 내용을 - 문학적, 종교적으로 거룩하게 표현한 것으로., 설화적 표현 속에는

관련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탄생지 '룸비니 동산'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아쇼카왕의 석주(石柱: 열반 후 200년 뒤)

카필라국은 왕자가 태어나자 온통 축제와 기쁨이 이어졌습니다

정반왕은 왕자의 이름을 싯다르타(悉達多)라 이름 지었습니다. 카필라국의 대를 이를 왕자가 탄생하였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당시 위대한 선인으로 존경을 받던 백살이 넘은 백발의 아시타 선인이 왕자를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왕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왕자에 대한 예언을 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비람강생상

아시타 선인은 어린 태자를 자세히 보더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정반왕이 걱정이 되어 그 이유를 묻자 - '아시타'선인은

'태자가 성장하면 온 천하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해서 수행의 길로 들어서면 깨달음(道)를 이루어 위 없는 진리를 증득한 부처님(Buddha)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며,

자신은 나이가 많아 '그 모습 못 보는 것' 때문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팔상도(八相圖=八相成道)에서는

②'비람강생상(毘濫降生相)'으로 표현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

왕은 아시타 선인의 말을 듣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된다는 말에 매우 기뻐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대를 이어 왕이되어야 할 왕자가 훗날 출가를 하면 '붓다'가 될 것이라는., 또하나의 예언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야 왕비의 죽음 :

첫 아이를 출산한  마야 왕비는 나이가 많아, 출산 이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야 왕비는 자신의 동생인 '마하파자파티(마하프라자파티 Mahaptajapati)'에게 어린 왕자를 부탁하며,
왕자를 낳은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정반왕의 슬픔과 함께 왕궁 안은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이후 왕자의 앞날을 위해 마야부인의 동생인 '마하파자파티'가 새 왕비가 되었으며, 왕자는
새어머니인 이모 '마하파자파티'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_[당시 '인도의 관습'이었다]

최종수정 201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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