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문화 : 불전의 벽화 (佛殿壁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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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우리나라 사원벽화의 역사
 
벽화의 기원은 곧 불화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최초의 불교 회화가 벽화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불교 최초의 벽화가 남아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기원은 불명하지만

경전(經典)상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불교의 성립과 같은 시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根本說一切有部毘那耶雜事"와 같은 경전에서 보면, 문에는 무기를 든 야차(夜叉), 강당에는 포교(布敎)의 장면, 식당에는 음식은 든 야차,

수도하는 방에는 흰 뼈와 해골을 그린다고 언급되어져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초기의 사원벽화는 주로 교화적이거나 장엄적인 주제의 벽화가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다문천왕(多聞天王) : ☞

수미산 중턱 4방의 四王國을 다스리며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중

북방천왕인 多聞天王의 모습이다. 양손에 각각 창과 보탑(寶塔)을 들고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서 있는 위엄에 찬 모습.

여래도나 설법도에서와 같은 붇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것은

초기 불교미술(無佛像時代)에서는 붇다의 모습을 형상화하지 않는다는 경향 때문인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불상이 형상화되고, 또한 불교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불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불교적인 존상(尊像)과 경변상도(經變相圖), 불존도(佛尊圖), 내영도(來迎圖) 등 각종 주제가 벽화로 장엄된다. 우리나라의 사원벽화는 선사시대의 바위조각이나 그림,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을 이어 받아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그려지기 시작했다. 삼국시대 사원벽화는 남아있지 않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에 불상, 승려, 연꽃, 비천 뿐만 아니라 '장천1호분'에서와 같이

불예배도(佛禮拜圖)가 그려지는 따위의 불교적인 주제가 많이 그려졌으므로, 그 당시의 사원에도 분명 벽화가 그려졌을 것이다.

그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통해 보아도 안흥사(安興寺)의 53불(佛),

흥륜사(興輪寺)의 벽화, 단속사(斷俗寺)의 유마상(維摩像), 금산사(金山寺)의 미륵현신수계도(彌勒現身受戒圖) 등 벽화에 대한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원벽화 제작의 전통이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모든 사원의 전각에는 다양한 불교벽화가 그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벽에 직접 그리는 사원벽화는 건물과 운명을 같이하는 특수성으로

전각이 소실되면 벽화도 따라서 소멸되고, 또 채색이 떨어지거나 퇴화되면 새로이 제작되어 오래된 벽화는 드문 편이다.

또한 제작상의 어려움과 대량 생산의 필요성 때문에 조선 후기부터 벽화대신 탱화가 주로 그려졌기 때문에 벽화는 외벽이나 포벽 같은 곳에 주로 남게되고 후불벽이나 좌우벽면에 봉안되는 불화는 거의 탱화로 대치되어 갔다.

그러나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 신흥사의 대적광전, 선운사(禪雲寺) 대웅전, 통도사(通度寺) 영산전, 위봉사(威鳳寺) 보광명전, 범어사(梵魚寺) 대웅전, 금산사 미륵전 등에는 우수한 벽화가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연지(蓮池) : ☞

극락세계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나타낸 연못에는 활짝 핀 연꽃과 연잎이 가득찬 모습이다. 큼직한 연잎들이 강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Ⅳ. 미륵존상(彌勒尊像)과 미륵전(彌勒殿)

미륵(彌勒=Maitreya)은 현재 수미산이라는 우주의 상단인 도솔천(도率天=tusita)를 주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보살이다.

이 보살은 석가 부처님이 입멸한 후 56억7천만년 후 쯤에 사바세계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 내려와서 부처님인 미륵불로 성불(成佛)하여 석가불이 못다 구제한 중생들을 3번의 설법으로 모두 구제한다는 미래불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륵불은 미륵보살[彌勒上生經]과 미륵불[彌勒下生經]의 두 성격을 갖고 있으며, 모습도 보살과 불(佛)의 두 존상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도 아미타신앙보다 성행되어
국보 78호, 83호의 두 금동보살반가상같은 미륵상을 활발히 조성했으며, 통일신라때도 그대로

존속했거나 또는 보다 성행했다.

태현(太賢) 스님의 원찰이었던 경주 남산 용장사(茸長寺)의 미륵장육존상, 남백월사(南白月寺)의 유명한 미륵존상, 그리고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조성한 금산사 미륵전의 금동장육존상 같은 많은 예가 있다.

이들은 신라의 미륵사상을 대표하던 종파인 법상종, 이른 바 태현계와 진표계 법상종 주불전의 주존으로 주목되는데 특히 금산사 미륵상과 벽화는 가장 저명한 예이다.

진표율사가 미륵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자신과 함께 계법(戒法)을 받은 사실에 감동되어 미륵장육상을 주성(鑄成)하고 금당남벽에 미륵이 하강하여 수계(受戒)하는 모습의 벽화를 그렸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보다시피

766년경에, 이 금산사 미륵전에는 금동미륵장육상과 남벽에 미륵수계벽화가 그려졌던 것이다. 미륵벽화는 주로 세가지 형식으로 그려진다. 미륵정토변상과 미륵하생도 그리고 미륵래영도(彌勒來迎圖) 등이다.
 
첫째, ① 미륵정토변상(彌勒淨土變相)은 미륵보살이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의 미륵천궁(彌勒天宮)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미륵보살은 단독으로 그릴 때도 있지만 보살과 성중 그리고 범천과 제석천 같은 외호중을 배치하기도 한다.
 
그 다음 ② 미륵하생도는 용화수 아래에서 대중들에게 설법, 구제하는 3회(三回) 장면을 주로 묘사한 것이다. 끝으로 ③ 미륵래영도는 보관을 쓴 미륵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중생을 도솔천으로 맞이해가는 그림이다.

그런데 금산사 남벽 미륵수계 그림은 이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른

독특한 경변상도의 일종인데, 이 수계그림이야말로 금산사와 진표율사의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진표계 법상종(法相宗)의 핵심사상을 묘사한 것으로 주목된다.

이러한 미륵존상이나 미륵변상도를 봉안 배치한 전각을 미륵전(彌勒殿) 또는 용화전(龍華殿)이라 말한다.

금산사의 미륵전은 가장 유명한 불전이지만 지금은 없어진 법주사의 용화전과 익산 미륵사의 3불전도 또한 굉장히 저명했던 곳이다.

금산사의 미륵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3층 법전으로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이 건물에는 진표 때의 미륵계수도가 없어졌다. 모두 조선조 후기에서부터 근세에 걸쳐(1748~1940) 제작(制作)한 벽화이지만, 1층 내포벽과 각층 외벽 및 포벽 벽화들이 다채롭게 그려져 미륵전의 격을 한층 높여주고 또한 장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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