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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
계속 ↙
학문으로서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유교적인 입장을 기준으로 삼은 그였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본다.
'次贈朴君 戱效其體'(차운하여 박군에게 주며 희롱조로 그 시체를
본받는다)
차증박군 희효기체
滄海萬頃波(창해만경파) 만경 창파 너른 바다도
始由一勺多(시유일작다) 처음엔 한 방울에서 시작하는 것.
日月大於地(일월대어지) 해와 달이 땅보다도 더 크지만
烏兎何婆娑(오토하파사) 세월은 어찌하여 그리도 빨리 가나.
北極天之체(북극천지체) 북극은 하늘의 꼭지로서
衆星羅天花(중성라천화) 뭇 별들이 꽃처럼 반짝반짝 빛나네.
地旋却不省(지선각불성) 땅이 돌고 돌아도 알지 못하니
將奈墜空何(장내추공하) 하늘이 무너지면 어떡하려나.
人生內天地(인생내천지) 사람이 천지 속에 살고 있으면서
徒向夢夢過(도향몽몽과) 한갓 멍청한 속에 지나는구나.
曲木忌直影(곡목기직영) 구부러진 나무는 곧은 그림자를 싫어하고
치性本不阿(치성본불아) 해치의 성품은 본래 아부를 하지
않는다.
知否儒與釋(지부유여석) 아는가 모르는가. 유도와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여
薰유不同科(훈유불동과) 향기와 똥내는 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
洙泗舊光芒(수사구광망) 수사에 옛날 넘치고 넘치는 공자의
학통
漸투竺乾家(점투축건가) 차츰차츰 불교로 변해 간다.
誰爲繪事人(수위회사인) 누가 종이와 비단이 있은 뒤에
素功敎後加(소공교후가) 채색 쓰는 걸 알려 주겠는가.
君才具天美(군재구천미) 그대의 재주는 천연적으로 아름다우니
夢吸五色霞(몽흡오색하) 꿈속에 오색 놀을 마셨나 보다.
세상이 불교를 숭상하는 것을 오히려
못마땅하게 생각한 김정희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교와 불교를 '향기와
똥내'라고 비유하여 극단적으로 비유하면서 유교 공부를 강조하고 있다.
공자가 살아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洙水(수수)와 泗水(사수)가 불교 지역으로 바뀌어
간다는 비유를 들어, 현실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題神溪寺 萬歲樓'
(제신계사
만세루) 신계사 만세루에 쓴다
金剛萬物觀
(금강만물관) 금강산 만물상 구경거리는
最爲名過實
(최위명과실) 이름이 실물보다 더욱 좋다.
其語本自誕
(기어본자탄) 그 속엔 허황된 말이 너무 많아
面目殊全失
(면목수전실) 본 모양을 모두 잃어 버렸네.
又有好事者
(우유호사자) 게다가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拈起新萬物
(염기신만물) 다시 만물상을 새로 정한다고.
其新其舊何
(기신기구하) 새것보다는 옛날 것이 어떠하냐
彼境此境一
(피경차경일) 저기도 그러하고 여기도 그러해.
試問判命去
(시문판명거) 어떤 것이 좋은가 말 좀 해 보소
所得竟何別
(소득경하별)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俄者仰視處
(아자앙시처) 아까 쳐다볼 제 보이던 곳이
俯觀還不悉
(부관환불실) 지금 내려다보니 도리어 보이지 않네.
若有眞境界
(약유진경계) 만약에 참으로 신선의 지경이 있다면
赤城而丹闕
(적성이단궐) 적성과 단궐이 즐비하리.
當勇猛精進
(당용맹정진) 마음먹고 용감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亦不憚올山
(역불탄올산) 산이 높다고 걱정할 게 없네.
憐彼世間人
(연피세간인) 아! 가엾어라. 저 세상 사람들은
未覩想황惚
(미도상황홀) 황홀한 이 경치 보지도 못하네.
法眼空見欺
(법안공견기) 중들은 거짓말하기가 일쑤니
遮葉事痴絶
(차엽사치절) 차섭의 일은 허무한 소리가 너무
많아.
我說眞實義 (아설진실의) 내 말은 모두가 진실한 것뿐이다
靑松旁參質
(청송방참질) 저 소나무가 잘 증명하고 있네.
知不造化初
(지불조화초) 잘 들어 두어라.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寧有先試筆 (영유선시필) 어찌 글씨를 써 놓은 일이 있었겠는가?
願言崇明德
(원언숭명덕) 제발 마음 깨끗이 먹고 덕을 닦아서
截念其愼勿
(절념기신물) 신선이니 부처니 생각 말고 조심조심하여라.
이 글 역시 한마디로 유교를 하라는 말로
그치고 있다. 세상의 승려들이 이러쿵저러쿵 말만 많이 하지 진실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 하나 있던가. 그런 허무맹랑한 말들에 현혹되지
말고 유가의 학문을 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句(구)의 明德(명덕)은 大學(대학)의 '명덕'으로서,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을 유가의 근본으로 삼은 그의 주장이 한층
확연하게 드러난다.
'念以仲論詩卷 又要一轉語近日末流之弊極矣 率題如此只可收之巾箱而已
六首'
'염이중론시권 우요일전어근일말류지폐극의
솔제여차지가수지건상이이 육수'
(중씨의 시를 논한 책으로써 또 한마디 말을 붙여 달라고 요구하니
근일 말류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어쨌든 그대로 이와 같이
써서 다만 책상에 보관해 두는 것이 가할 것이다. 6수)
斷斷忠孝旨
(단단충효지) 진실한 충효의 뜻은
法本自儒家
(법본자유가) 그 법이 유가에서 시작했다.
胡爲禪理喩
(호위선리유) 어떻게 부처의 말로 비유하여
標水月鏡花
(표수월경화) 물의 달과 거울의 꽃으로 표준을
삼는가.
불가에서 말하는, 시 배우기를 참선하듯이
배워야 한다는 내용의 시 이론은 嚴羽(엄우)의 滄浪詩話(창랑시화)에서 주장되었다.
"시를 참선하듯 배우되, 死句(사구)를 더듬지 마라. 이리저리 어디도
좋지만, 진짜는 기쁜 곳에 있다. 또는 신선을 배우듯 하지만, 애써 보아도
끝내 만나지 못한다.
홀연히 毛骨(모골)이 바뀌었다면, 바로 語句(어구)의 장난이다.
居仁(거인)이 화두를 말하는 법은 요지를 깨달으려 함이다. 늘 말하지만 옛날의
작자는 하나하나 이 길을 걸었노라."
이러한 이론은 김정희에게는
하나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물이나 달을 비유하여 표준인
양 하지만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그것보다는 확실한
儒家(유가)의 학문이 忠(충)과 孝(효)라는 면만 보아도 훨씬 더 실용적이라는 확언이다.
불교보다는 유가 쪽에 기운 발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시는 불교를
따르지 말고 우선 유교를 몸에 익히라는 충고의 말로 결론을 맺었다.
이러한 사고는 문학 작품이라고 하는 詩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당대에 華嚴學(화엄학)과 禪理(선리)에 두루 통한 白坡(백파)와 禪理 및 經義(경의)를 신랄하게
토론하는 모습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 당시 백파는 전라도 순창 龜巖寺(구암사)에서
禪講法會(선강법회)를 열어 종풍을 드날린 고승이었다.
그런 고승과의 논쟁에서도
김정희는 훈고적인 학문 방법론을 이용하여 백파를 논박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낱 허황된 주장이 아니고 실제로 증명될 수 있을 때에 가치가
있다고 반론한 것이다.
김정희의 불교학은 고증학적인 학문 방법론이 활용되었다. 곧 [題川頌金剛經後(제천송금강경후)]나
[題佛說四十二章經後(제불설사십이장경후)] 등에서도 그는 고증학적인 입장에서 佛經(불경)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김정희는 고증학과 불교를 각각 별개의 학문으로 구분하지
않고 영역은 다르되 연구 방법론은 고증학이라는 철저한 하나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석탄일에 대한 학설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에게 불교적 영향을 빼놓을 수 없듯이 반대로 고증학적 태도
또한 당대의 불교 교단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백파와의 논쟁은
바로 김정희의 실증적이고도 객관적인 변증의 태도로서, 당시 관습적인
예에 의해서 이어지던 당대 선불교계를 강하게 압도하고 말았다.
여기서
시작된 논쟁은 백여 년이나 이어지면서 한국 禪學(선학)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艸衣(초의)가 편찬한 震默祖師遺蹟考(진묵조사유적고) 등은 김정희의
자문 아래 실사구시적인 고증학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김정희의 문집에는 불교 사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 타 사상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불교시는 불경과 같은 불교 관련 문헌, 禪語(선어),
禪宗(선종)의 사원이나 조사들의 사적, 그들과의 교유를 나타낸 것들이 많다.
불교 문학을 이종찬은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居士(거사)의 처지에서 佛家(불가)의 禪理(선리)나 교리를 詩로 표현한 禪理詩(선리시), 시인이
불교의 종교성과는 관계없이 불교적 故事(고사)와 史蹟(사적) 또는 불가의 현실적
사실과 연관하여 쓴 禪事詩(선사시), 시인이 禪을 빌리면서도 선의 표상이 없이
선미만을 나타낸 경지의 시인 禪趣詩(선취시)가 있다.
김정희의 경우 불교를 시인의 입장에서 끌어들인 경우로 받아들일
수 있다.
'朝爲一人所困뇨 暮爲一人所困뇨 如經栖然 戱贈艸衣上人'
'조위일인소곤뇨
모위일인소곤뇨 여경학연 희증초의상인'
(아침에
한 사람에게 놀림을 당하고 저녁에 또 한 사람에게 놀림을 당하니 마치
학질이 하루 걸러 번갈아 찾아오는 것 같아서 희롱조로 초의 상인에게
부치다)
鬼栖猶爲隔日難 (귀학유위격일난) 학질 귀신이 하루 걸러 찾아오는
것도 몹시 괴로운데
朝經暮又熱交寒 (조경모우열교한) 아침에 지나고 저녁에 또 찾아와
춥고 더운 게 끝이 없구나
山僧似惜醫王手 (산승사석의왕수) 산의 중이 그 좋은 부처의 솜씨를
아껴서
不借觀音救苦丹 (불차관음구고단) 관음보살이 괴로움 없애 주던
환약을 나눠 주지 않는가
비록 제주도의 풍토병은 아니라지만 학질에
걸려 고생하면서 艸衣(초의)에게 투정을 부린 작품이다. 학질과 오한, 열로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먼저 읊고, 다음에는 초의에게 푸념을 하고
있다.
어째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부처님이나 스님이 이런 인간을 그냥
놔두고 치료해 주지 않느냐? 구고단을 가지고 있는 관음보살의 손을
빌려 달라는 말이다. 불교 용어를 구사하여 佛家的(불가적)인 사유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증학적인
견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곧 현실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불교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불교도 그것이 인간의 현실에 기초로 하지 않는
한 다만 공리공론만을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견이 은근히
담겨 있다.
Ⅳ. 석가 탄신일에 대한 입장
석가 탄신일에 대한 논쟁이 그 당시 얼마나
있었는지 필자는 잘 모른다. 다만 다음에 인용하는 詩를 통해서 약간
추정할 뿐이다. 여기서 김정희는 실학자와 불교인으로서의 태도를 애매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申緯(신위)에 의해서 시작된다.
1831년 2월
8일 아침에 신위는 '二月八日作'이란 시를 지어 당시 禪宗(선종)의 대표격인
초의에게 보냈다. 이 시를 받아 본 초의는 그 작품에 대한 화답을 자기가
하지 않고 김정희에게 보여주며 자기 대신 지어 주기를 요청한 것 같다.
이에 김정희는 초의를 대신해서 자신의 의견을 실어 초의에게 지어 주었다.
그리고 초의는 김정희가 보내 온 작품을 그대로 두지 않고 약간 수정을
해서 신위에게 보냈다. 이것이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동기이다.
이 작품이 탄생된 배경은
중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 선불 교단에 유행하던
백파와 초의의 논쟁에 하나의 불씨를 덧보탠다고 의미를 붙이면 이 작품은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위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득 이날이 석가의 탄신일인지라, 별 생각 없이 한 수 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별 생각 없이 지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석가 탄신일을 4월
초파일로 본다면 신위가 이 시를 아무런 생각 없이 지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신위는 석가 탄신일을 2월 8일로 보기 위해서 일부러 많은 고증까지
해가며 애써 이 작품을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신위의 의식이
담겨 있는 동시에 김정희나 초의의 사유가 실려 있는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김정희는 실학자로서의 자신과 불교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김정희의 갈등이 있는 것이며,
이 갈등을 어떻게 용해시키는가가 본고의 관심이 될 것이다.
'二月八日作'―紫霞 ('이월팔일작'-자하)
釋迦生辰遇今蚤
(석가생신우금조) 부처의 탄신은 좀 이른 오늘이니
非我臆說亦有考
(비아억설역유고) 이는 나의 억설이 아니고 근거가
있다.
周正夏正建寅子 (주정하정건인자) 주정과 하정은 인월 자월로 세웠으니
四月二月隨顚倒
(사월이월수전도) 사월과 이월이 이어 전도된 것이지.
昭王甲寅四月八
(소왕갑인사월팔) 소왕 갑인년 사월 팔일은
西方聖作徵乾道
(서방성작징건도) 서방에서 성인이 태어나 천도를
실현한 날.
恒星不見井泉溢 (항성불견정천일) 항성이 사라지고 샘물이 넘쳐흘렀으니
太史蘇繇占奇兆
(태사소요점기조) 태사 소유는 기이한 징조라 점을
쳤지.
是則夏正之二月 (시칙하정지이월) 이는 바로 하정의 이월달인데
世俗不考何艸艸
(세속불고하초초) 세상에서 살펴보지도 않고 어찌
그리 떠드는가.
東人不重上元節 (동인불중상원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상원절은
가볍게 여기고
競說浴佛燃燈好 (경설욕불연등호) 부처님 오신 날만 욕불하고 연등하며
중시했었다.
遂令四月初八日 (수령사월초팔일) 마침내 사월 초파일을 날짜로
잡아
硬做佛誕燈火鬧 (경주불탄등화료) 불탄일이라 여겨 등불을 요란하게
밝혔네.
今我면絲寄禪榻 (금아면사기선탑) 이제 내가 다 늙어서 스님에게
글을 띄우니
二月八日春江曉 (이월팔일춘강효) 이월 팔일 봄날 강가의 새벽
아침이로다.
我燈無盡本無燈 (아등무진본무등) 나의 등불 한없이 많지만 본래
무등하여
作詩佛事心虔禱 (작시불사심건도) 부처님 일을 시로 지으니 마음은
경건해진다.
파려萬頃綠浪上 (파려만경록랑상) 수정 구슬은 푸른 물결
너머로 두둥실 떠다니고
遠山八字修眉掃 (원산팔자수미소) 먼 산이 팔자 모양으로 고운
눈썹을 쓸어낸다.
中間湧出蓮花臺 (중간용출연화대) 중간에는 연화대가 우뚝 솟아났는데
法相端嚴衣七寶
(법상단엄의칠보) 법상은 단아하고 엄중하게 칠보를
휘감았구나.
稽首白佛佛無言 (계수백불불무언) 머리 조아려 공양하는데 부처님은
말이 없고
意援妙諦心自了 (의원묘체심자료) 남몰래 묘체를 건네시니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
一切榮辱本平等 (일체영욕본평등) 세상사 온갖 영욕 알고 보면 평등한
것이니
再要業障消煩惱 (재요업장소번뇌) 다시 한 번 업장을 넘어 번뇌를
없애야지.
作如是想忽無覩 (작여시상홀무도) 이런 생각 하는 중에 홀연히 사라지고
遍身山色江光繞
(편신산색강광요) 산 빛깔과 강 빛이 온몸을 두루
감싸는구나.
'答二月八日 作佛辰代艸衲'(이월 팔일 작불신에 답한다. 초납을 대신하다)―金正喜
'답이월팔일
작불신대초납'
二月八與四月八
(이월팔여사월팔) 이월 팔일이냐 사월 팔일이냐
釋迦生辰紛紛說
(석가생신분분설) 부처의 생신이 학설도 분분해라.
細考不止一周昭
(세고불지일주소) 자세히 상고하면 주 소왕에 그치지
않고
上遡武乙幷夏傑 (상소무을병하걸) 위로는 무을과 하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夜明還是莊王時 (야명환시장왕시) 밤이 환했다는 것은 바로 장왕
때인데
春秋元不差月日 (춘추원불차월일) [춘추]에는 본래 달과 날의 차이가
없었다.
不知周昭更何據 (불지주소경하거) 주 소왕 때라 하니 무엇에 근거했는지
모르겠고
穆王平王復相괄 (목왕평왕부상괄) 목왕이나 평왕 때라 하니 자세히
살펴야 한다.
却將壬子爲甲寅 (각장임자위갑인) 임자년을 가지고 갑인년이라고
하니
蘇繇刻石何황惚 (소요각석하황홀) 소유의 각석이 어찌 그리 어지러운가.
五日七日且無定
(오일칠일차무정) 5일인지 7일인지도 또 일정치
않아
古鏡長曆各藤葛 (고경장력각등갈) 고경과 장력에도 갈등이 많구나.
此云入道非生辰
(차운입도비생신) 이날은 도를 깨친 날이지 생신이
아니라고
阿那含不本起別 (아나함불본기별) 아라함경에도 본래 따로 얘기한
적이 없다.
鷲靈聖賢法印傳 (취령성현법인전) 영축산의 성현이 법인을 전수해
왔으니
石柱文字玄機洩 (석주문자현기설) 석주에 새긴 문자가 천기를 누설했네.
聲聞依희滯方隅
(성문의희체방우) 성문에 의해 그대로 우리 나라에
굳혀져
離迦蒜轉姿와脫 (이가번전자와탈) 가섭의 손에서 떠나자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妙吉祥原曼殊利 (묘길상원만수리) 묘길상의 원래 이름은 만수리인데
無盡意乃阿差末
(무진의내아차말) 무진장하다는 뜻은 바로 아차말이
될 것이다.
千구尋月摠幻相 (천구심월총환상) 천개의 물방울에서 달을 찾으니
모두가 환상이요
衆盲喩象難究詰 (중맹유상난구힐) 맹인들이 코끼리를 말하니 끝까지
찾아내기 어렵다.
化胡經又沒巴鼻 (화호경우몰파비) 화호경에도 근거라곤 전혀 없어
此訟漫漫無時畢
(차송만만무시필) 이 송사 질질 끌어 언제나 끝이
날까.
尼丘聖辰亦異詞 (이구성신역이사) 공자의 생신도 또한 다른 학설이
있어
劫前隱現疇能悉 (겁전은현주능실) 겁 전에 숨었다 나타남을 뉘라서
능히 알소냐.
百千燈攝一牟尼 (백천등섭일모니) 백천의 등불이 모니주 하나로
모이니
四月不害作二月 (사월불해작이월) 사월이건 이월이건 해롭지 않아.
然而我佛元無生
(연이아불원무생) 그런데 우리 부처는 원래 태어남이
없었으니
出門一笑空江闊 (출문일소공강활) 문을 나와 텅 빈 강물 보고 웃을
뿐이다.
※ 고경(古鏡):
옛날의 거울. 진시황이 사람을 비추어 보던 거울. 장력(長曆):
만년력(萬年曆). 진(晉)나라 두예(杜預)가 춘추장력(春秋長曆)을 만들었다.
장력이란
것은 춘추의 이칭(異稱)임. 이가(離迦):
불경 결집이 가섭의 손에서 떠나자 정확한 고증이 없게 되었음을 말함.
이 작품은 그 길이에 비해 의외로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앞의 부분은 석가의 탄신을 고증학적으로 밝혀
보려는 의욕이 강하게 나타나 있고, 뒤의 부분은 석가의 탄신일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이 시의 구조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상반된 구조를 가져왔을까 ?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목적인 석가의 탄신일 자체가 고증학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申緯(신위)나 김정희는
많은 분량을 이 고증에 할애하고 있다. 그 고증에 비해 결론은 너무나도
단순하게 처리되고 있다.
사실 이렇게 기다란 고증의 태도를 간단하게
부정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고증 불가능을 한마디로 대변할 때에 그 힘은
증가되는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고증이 불가능한 문제에 대하여 가장 도피하기 쉬운 곳이 불교이기도
하다.
불교는 무엇이든 포용할 태도를 지니고 있는 신비한 종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실상 석가의 탄신일이 밝혀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는가. 그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밝혀지든 아니든 그것이 불교라는 宗旨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한편 김정희는 이 시에서 은연중에 공자와 석가를 동격으로 올려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생신도 또한 다른 학설이 있어, 겁
전에 숨었다 나타남을 뉘라서 능히 알소냐"라고 하였다. 당시 사대부
신분으로 공자와 석가를 동격으로 올려놓고 있음은 매우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이었다.
이런 면을 본다면 그는 주위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보편주의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다음에 드는 작품은 이러한 그의 사상을 보여주는 일단이라고
생각된다.
'銀魚爲鼠偸示艸衣(은어위서투시초의)'
은어를 쥐에게 도둑 맞고 초의에게 보인다
五十銀條針生花
(오십은조침생화) 오십 개 방망이가 은어로 화해
來自江亭漁子家
(내자강정어자가) 고기잡이 집에서 보내왔구나.
漁子得魚不自食
(어자득어불자식) 어부는 잡아서 제가 먹지 않고
包裏珍重寄遠客
(포리진중기원객) 칡꾸러미에 싸고 싸서 멀리 온
늙은이에게 보냈구나.
사牙枯肺因麻령 (사아고폐인마령) 바짝 마른 배창주에 이
좋은 고기 보았으니
口角屢拭참津零 (구각루식참진령) 입이 씰룩씰룩 허기진 침을 씻곤
한다.
冷落廚人喜動色 (냉락주인희동색) 우리집 찬모 너무 좋아서
將見食單登珍錯
(장견식단등진착) 조금 있으면 밥상에 좋은 반찬
나오게 됐네.
夜來穴隙壯哉鼠 (야래혈극장재서) 밤 사이에 굴 속에서 큰 쥐 한
마리가
偸盡了無遺寸許 (투진료무유촌허) 들락날락 죄 물어가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네.
不知鼠嗜與人似 (불지서기여인사) 모르겠다. 쥐도 사람같이 고기를
좋아하는지
拖腸能解魚之美 (타장능해어지미) 창주를 갈라보면 능히 고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겠다.
鼠食人食將無同 (서식인식장무동) 쥐가 먹든 사람이 먹든 같은 게
아니던가
平等觀來理則公 (평등관래리칙공) 평등하게 본다면 이치는 곧 같은
것.
艸衣老師適在傍 (초의노사적재방) 초의 노사 마침 곁에 있으니
彼自茹素看尋常
(피자여소간심상) 그는 본래 채식만 하여 고기는
심상히 볼걸세.
※ 마령(麻령): 곧 적전(赤箭).
천마(天麻).
이 시의 세계에서는 귀천과 우열의 등급이
보이지 않는다. 평등의 세계이다. 쥐가 먹든 사람이 먹든 결국 아까운
생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大乘(대승)의 경지로 바라본다면 누가 먹든지
하나라는 관념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세계의 모든 사물은
다음 시에서와 같이 "걸림이 없는 곳이 바로 내 고향"이라는
의식이 자연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贈艸衣(증초의)'
초의에게 준다
任爾傍參笑百場
(임이방참소백장) 스님은 멋대로 마냥 웃고 있으소
了無애處卽吾鄕
(요무애처즉오향) 걸림돌 없는 곳이 바로 우리 사는
데라오.
依人山鳥空喧寂 (의인산조공훤적) 사람 옆의 산새는 부질없이 지저귀다
말다 하고
款客溪雲自煖凉 (관객계운자난량) 손님 맞는 시내 구름, 제냥으로
따뜻하고 시원하다.
最是一床無別夢 (최시일상무별몽) 무엇보다도 한 침상에서 꿈이
다르지 않으니
거能同味有他腸 (거능동미유타장) 같은 음식 먹으면서 창자가
다를소냐.
잡花鋪上休藤葛 (잡화포상휴등갈) 온갖 꽃 수놓은 포단에서
등이니 칡이니 가리지 마라
恐把摩訶說短長 (공파마하설단장) 불교에 의지하여 장단을 논할까
두렵구나.
※ 마하(麻訶): 불가어(佛家語).
여기서는 불교를 말한다. [지도론(智度論), 三]에 "마하는 큼(大),
많음(多), 좋음(勝)" [或大或多或勝(혹대혹다혹승)]
'荒年禁酒 村少皆買餠看花去 今日風甚
獨坐無聊 泥筆率題偏屬風餠 二首'
'황년금주
촌소개매병간화거 금일풍심 독좌무료 이필율제편속풍병 이수'
(흉년이 들어 금주령이 내려 마을 소년이
모두 떡을 사가지고 꽃구경을 갔다. 오늘 바람이 심히 불어 홀로 앉았자니
너무도 무료하여 붓에 먹을 묻혀 쓰는데 바람과 떡만을 읊었다. 2수)
少年元不費商量
(소년원불비상량) 젊은 사람은 원래 자세히 계산하지도
않고
雨雨風風大母傷 (우우풍풍대모상) 비 오건 바람 불건 아무 걱정
않는구나.
買餠看花還具足 (매병간화환구족) 떡을 사고 꽃을 보니 도리어 만족해
雲門禪罷又公羊
(운문선파우공양) 절간에 참선 파하자 또 공양전
읽는다.
※ 공양(公羊): 춘추삼전(春秋三傳)중
하나라고 하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말함
이 작품에서는 아예 유불선의 관련마저도
부정을 하는 태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유교와 불교와 도가가 무슨
가림이 있겠느냐. 아무런 구애가 없음이 바로 내가 처하는 곳이란 말이다.
지극히 불교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자리에서 불경도 읽고 그것이 지루하면 儒經(유경)을 읽는 생활이다. 유교와
불교가 지극히 단순하게 어울리는 생활의 한 모습이다. 위의 '答二月八日 作佛辰代艸衲(답이월팔일
작불신대초납)'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고증과
불교가 각각 개성이 강한 독립적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화합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결국 그것은 어떠한 길을 택하든지 목적지에
이르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단순한 사고일는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김정희가 추구하는 고증학적 연구 방법일는지는 더군다나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후자의 일방을 취하기로 한다. 그럴 경우 위의 작품이 해결될
수 있는 근거를 지닌다. 실학자로서의 김정희는 고증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하여 자신의 길을
나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의 생신을 고증하려는 그의 태도는 고증학에서
탈피하여 불교로 돌아갔다. 그곳이야말로 석가의 탄신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석가의 탄신을 증명할 근거가 있는 곳이라면
아무것도 마다하지 않는 방법을 고른 것이다.
때문에 그는 때론 유교를
강력하게 주장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가서는 그것을 부정하고 불교를
주창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목적지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보다는
목적지 바로 그 자체에 비중을 두는 고증학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고증학은
바로 결과적으로 당시의 현상을 해석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Ⅴ. 결 론
김정희가 불교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儒家(유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교는 그가 어려서부터 몸에 밴 생활의 일부분이었고, 유가는 그의
철학이자 학문의 길이었다.
특히 고증학이라는 학문의 방법은 김정희에게는
모든 학문의 방법론이었으며, 여기에 의지하여 불교까지도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점이 그의 불교를 특징지어주는 면모일 것이다.
석가의
탄신일을 놓고 신위와 토론을 벌일 때 그들의 태도는 단연코 고증학적이었으며,
결론적으로 佛家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중도론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떠한 길을 가든 목적을 중요시 여기는 김정희의 태도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당시 그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곧 천민 계층에 속했던 승려와 아무 거리낌 없이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가 아닐까 한다.
또 당시의 신분으로는 中人에
속하는 사람들과도 많은 교유를 하였던 것을 상기한다면, 자신의 실학
사상과 아울러 고증학적 방법론을 지상의 길로 생각하는 그에게는 다
같은 길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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