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Korea)의 미술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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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 (1) -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고유한 미가 있다. 우아하고 섬세하며, 그러면서도 소박하다. 또한 자연의 미에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시키면서도 고차적(高次的)인 것이 특징이다.

 
   삼국시대 : 서기 313년 전후
고구려 미술 :
쌍영총, 무용총, 강서 고분등이 유명하며, 여기에는 풍속도, 수렵도, 무용도, 사신도등이 그려져 있어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구려 미술의 특색은 다채롭고 독자적인 회화 수법으로, 당시 '담징' 등이 일본에 건너가 채색, 지묵(紙墨)의 방법을 일본에 전해 주었고, 법륭사의 벽화가 유명하다. 또한 회화의 기법 못지않게  많은 불상등의 표현에도 나타나 있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옷자락이나 화염문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쌍영총(고분) : 평안남도 용강군
전실과 후실이 있고 그 사이에 팔각 기둥이 있다. 천장은 투팔천정(鬪八天井)이고 화려한 무뉘가 그려져 있다.

무용총 고분벽화

기마 수렵도

연도의 벽화에는 호화로운 수레, 소를 모는 소년, 시녀가 그려져 있는데, 세 여인의 모습은 고귀하고도 부드러운 모습이다.

투팔천정(鬪八天井)=자연석 또는 장방형의 돌로 벽을 쌓고, 그 위에 층계를 지워 받침돌을 내어 물려서 천장의 높이를 좁혀가다가 다시

네 귀퉁이에 삼각형의 판석을 엇물려 올리고 그 위에 사각형의 큰 돌로 덮어 만든 천정이다.(페르시아, 인도 지방에서 들어온 방식)

장군총(將軍塚) : 통구에 있는 광개토왕의 능. 7층의 화강석조(花崗石造)로 밑면의 넓이는 '30제곱메타'이며, 5층에 현실(玄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전체 높이는 13 m가 된다.
 
우현리 대묘의 벽화 : 네 벽에 4 신[동:창룡(蒼龍), 서:백호(白虎), 남:주작(朱雀), 북:현무(玄武)]등을 그린 것으로, 그 그림은 뛰어난 공상력으로 신비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귀기(鬼氣)에 소름이 끼질 정도로 실감이 난다고 한다.
 
고분의 그림 :
   ㉠ 천상도 :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린 것으로 해는 삼족오(三足烏)로, 달은 토끼, 별은 북두칠성(北斗七星), 천왕은 비봉(飛鳳), 지신(地神)은 인수사신(人首蛇身)으로 표현되어 있다.

 
   ㉡ 신비도 : 4 신 이외의 '신선'이나 '괴물' 등을 그린 것.

무용도

   ㉢ 풍속도 : 사냥하는 모습, 씨름, 무용하는 것 등 여러 가지 고구려 생활 모습을 그린 것. 사냥을 하는 '수렵도'는 수법도 훌륭하지만,

고구려인들의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 문양도(紋樣圖) :
현실(玄室)의 천정  받침 같은 곳에 그려져 있다.

※ ① 운문(雲紋):구름을 도안해 그린 것  ② 연화문(連花紋):연꽃을  ③ 인동문(忍冬紋):인동풀을  ④ 수연문(水煙紋):물방울이 퍼진 자욱한 물연기를  ⑤ 기하문(幾何紋):기하학적인 모양 들을 도안하여 그린 것이다.

호오류우사 금당벽화

담징 고구려

조 각 :

㉠ 금동일광삼존불(金銅一光三尊佛) : 고구려 25대 평원왕 14년 제작

㉡ 전불(塼佛) : 부드러운 얼굴의 보살 입상. 여래 입상(立像) 등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이 시대의 유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 백 제 미술 :

서기 457년부터 550년 사이에 한반도 서남부에 자리를 잡고, 불교문화가 일어났다. 중국과 고구려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었다. 백제의 문화는 일본에 까지 전하여 졌다. 백제는 고구려와 인접하여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독창성이 강하며 평화롭고 낙천적인 면이 두드러져 고구려와는 다른 '부드럽고 여성적인 표현'이라고 구분된다.
 
이는 와당문과 불상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능산리 고분의 벽화와 송산리 6호 고분벽화에서 백제 미술의 빼어남을 느낄수 있으며, 백제의 고분벽화가 고구려 후기의 고분벽화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고구려와는 다른 독창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 림
㉠ 유운연화문(流雲蓮花紋) : 구름과 연꽃을 도안화해서 그린 것으로, 부여의 능산리 고분 천정에 그려져 있다.

㉡ 인사라아(因斯羅我) :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한 화가로 일본 회화의 시조가 되었다.

㉢ 아좌태자(阿佐太子) : 위덕왕의 아들로, 일본의 국보로 되어 있는쇼오토쿠태자의 삼부자(三父子) 상을 그렸다.

조 각 :

㉠ 금동 관세음 보살상(金銅觀世音菩薩像) :
국보. 백제 후기의 불상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 백제 문화의 조각은 일본으로도 건너가 일본의 호오류우사(法隆寺), 코오류우사((廣隆寺) 등에 유명한 조각 작품을 남겼다.

건 축 :
㉠ 정림사 오층 석탑(定林寺 五層石塔) : 높이 7.6 m. 체감률(遞減率)이 크고 안정감이 있는 석탑으로, 목조 건축의 유품이 남아 있는 석탑의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체감률 : 탑신의 층을 따라 위로 가면서 높이나 넓이가 줄어드는 비율을 말함.

공 예 :
㉠ 화전(畵塼) : 가로세로 각각 29cm 의 벽돌. 표면에 우아한 6가지 무뉘가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산경문(山景紋) · 와운문(渦雲紋) · 연화문(蓮花紋) · 귀형문(鬼形紋) · 반룡문(蟠龍紋) · 봉황문(鳳凰紋) 등]

㉡ 금동관식금구(金銅冠飾金具) : 일본의 국보로 일본공예의 원천이 된 것으로 그리이스적인 양식을 볼 수 있다.

고신라 미술 :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초기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신라는, 이후에는

백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할수 있다. 불교도 법흥왕(506∼527) 때에서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듯이, 문화 역시 삼국 중 뒤늦게 받아진 경향이 있으나, 신라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엿볼수 있는 정교함과 능숙함을 들 수 있다.



로뎅에 1300여년앞
선 '생각하는 모습'

즉 정교한 금속 공예, 세밀하고 능숙한 석재를 다루는 기술등의 발달이 신라 미술의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조 각:
㉠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 半跏思惟象) _☞
반가 사유상 중 대표적인 것이며, 높은 연대(蓮臺) 위에 앉아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생각하고 있는 모습으로, 중국의 북위(北魏)의 영향을 받고 있다.

건 축 :

㉠ 첨성대(瞻星臺) : 선덕여왕(632~646) 때 건조된 것으로, 높이 10 m, 밑면의 지름이 6 m, 위면의 지름이 3 m 이다. 허리의 곡선이 아름다운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이다.
 
㉡ 분황사 전탑 : 선덕여왕 3년에 건립하였으며, 처음에는 9층 이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분황사 전(塼)탑

공 예 :

첨성대

㉠ 금관(金冠) : 왕관, 왕자관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또는 내관(內冠), 외관(外冠)의 부분으로 구분 되어 있다. 순금의 관 틀을 만든 뒤

300여 개의 영락(瑛珞)과 비취(翡翠)로 만든 곡옥 57개를 달고, 귀에서 뒤쪽 위로 뻗은 날개에 당초문을 투각(透刻)하였다.

㉡ 순금 귀걸이 :

황금 바탕에 금 싸라기와 금실로 엮어 장식한 누금세공(鏤金細工)의 작품으로 정교하고 호화로운 모습(모양)을 하고 있다.

㉢ 순금 요대(腰帶) : 금으로 만든 '허리띠'로,작은 금판에 무뉘를 새겨, 이들을 연결하여 만들고 여러 가지 패물을 달었다.
 
㉣ 기마 인물형 토기(騎馬 人物形 土器) : 경질의 토기를 말한다. _무장을 한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작은 '테라코타'이며, 신라 무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회 화 :

기마인물 토기

㉠ 솔거 : 솔거의 작품은 현존하는 것은 없고, 이야기 만이 삼국사기에 적혀 있다.

황룡사 벽의 노송(老松)에 대한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고,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維摩象)과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상도 그의 솜씨로, 세상이 전하여 말해지기를 신화로 일컬어진다.

테라코타: "구운 흙"이라는 뜻으로, 유약을 바르지 않고 양질의 점토로 구운 제용기, 작은 조소류(彫塑類)를 말함.

보통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서 표면은 적갈색 또는 황색 빛깔을 띠고 있으며,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어 건축의 장식에도 많이 사용되어 왔다.
 

천정화(天井畵); 벽화의 한부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벽화에 비해 많은 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천정의 모양, 구분, 기능에 비추어 명백해 진다. 방안의 채색을 천정까지 넓힌다는 것은 예로부터 자연스런 관례이기도 하다.
한편 르네상스 이후의 천정화(天井畵)는 그 회화 표현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을 천정 저쪽의 넓은 세계로 유도한다고 하는 환각적 효과를 지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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