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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독특한 형식을 무시하고 내용만을
검토한다면, 샤카무니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이 동일함을 알게
될 것이다. _ 쇼펜하우어
1. 머리말
폴 드미에뷰는 [정신적 거울]이라는 그의 글에서 頓과 漸(돈
· 점)의 주제를
최초로 다루었다.
그 때 그는 [단경]의 유명한 게송들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였고, 곧 중국(장자, 회남자, 순자)과 인도(우파니샤드, 아상가,
유식, 샹카라)에 있어서의 선례들을 가리켜 보였다.
나아가 그는 중동(알
가짤리)과 유럽(플라톤, 플로티누스, 오리게네스, 디오니시오스 아레오파기투스
등)의 전통을 추적하였다. 드미에뷰는, 자신이 중국의 형이상학을 중국
내외의 유사한 것들과 대조하여 뚜렷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드미에뷰의 개척자적 시도 이래, 서양에서 이러한 주제에 관한 학술적
논의는 멈춤 없이 지속되었다.
1981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돈과 점에
역점을 둔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6년 후에 그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논문들에 약간의 논문을 보완하여 [돈과 점(Sudden and Gradual)]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몇몇 필자들은 선 이외의
종교연구에 있어서 돈점 양극성의 작용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제3장에서는
이와 유사한 점들이 중국의 시 비평과 미술이론에 시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방대한 부분인 제2장에서는 중국불교에서의 주요인물 예컨대
도생 · 지의 · 신회 및 종밀의 가르침에서의 돈점 개념에
대한 정밀한 탐구로 일관하였다.
이 책의 편집자인 그레고리와 평론자인 그리핏 폴크는 [돈과 점]에
나타난 돈과 점이라는 어휘의 의미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폴크는 그의 열성적인 논평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돈점의 양극성 혹은
돈의 상태에 관하여 대충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수많은 대립과 양분법 및 다양한 돈의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주제의 유사성, 역사적 고리, 또는 어의의 통일에 관한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선 이 책의 제2장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은
주의깊은 사례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폴크는 강력히 주장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의심스런 용어의 어휘적 의미에 도달하는 것이다.
최근 신비주의 학자들에 의한 에세이 전집의 중심에는 이와 아주
유사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에세이에서 강조하는 바는,
그들의 문화적 · 종교적 현상 안에서 '신비적' 전통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비주의'는 돈과 여러 가지 방향에서 유사하게
들어맞는 개념이다. 그것은 결코 숙명이 아니며, 다양한 문화적·종교적
현상 속에서 '발견되어'지기 시작함으로써 이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이미 모든 주요 종교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다수의 학자들이
논의한(혹은 계속 논의하고 있는) 바는, 신비주의야말로 역사적·문화적
환경을 떠나 실재하는 범세계적 종교현상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카츠가 엮은 에세이집은 이러한 경향에 대한 최초의 반동이다.
즉 그 강조점이 특수한 부류의 '신비주의'의 독특한 모습과 그 깊숙한
문화적·역사적·교리적 배경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전된 논의에 치중함이 없이, 말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특수한 대상을
연구하는 '신비적 상대주의'에서 제안하는 바 초점은 주로 '신비주의'의
본질에 관한 개념에 의해 알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우주적 신비주의를 제창하는 사람들의 사고 만큼이나
뚜렷치가 않다.
신비주의에 관한 엄밀한 정의가 결여되어 이와 같이
선의적인 논의들을 제자리에서 맴돌게 한다.
게다가 여러 다른 종류의
정의 사이에 차이점이 결여됨으로써,
많은 학술적 비평들을 그 의도와
목표에서 훨씬 벗어나게끔 만든다. 색다른 종류의 정의에 관한 명쾌함은
이것들에 대한 연구현상이나 학술문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돈과 점]에 대한 폴크의 고찰은 몇몇 필자가 어휘영역상 드미에뷰를
비평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명료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드미에뷰는 그 어휘영역을 어휘적 정의보다는 오히려 규정적 정의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규정적 정의의 기능은, 특수한 영역을 다룬 논문에서 사용함에 있어서
상징의 의미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명백한
기준 위에 眞·僞(진위)를 판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규정적 정의에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어휘와 어떠한 방법으로든 일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종
애매함을 없애는 데 사용된다. 어떠한 용어에 구축된 어휘적 의미들
가운데 하나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드미에뷰는 그의 글을 종교적 현상의 규정적 정의로 시작하며, 마침내
상징에 걸맞는 경우를 세계 종교들 가운데서 찾는다.
오늘날의 논문은
드미에뷰의 전통 위에 서 있다.
비록 몇몇 중국전적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어휘적 정의를 드러내고자 시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돈의 표상을 공식화하는 데 목표지워져 있는 것이다. 즉 드미에뷰의
'푯대없는 탐구'의 연장선으로서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의 표상을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탐구는 '신비적 우주주의'도 아니며, '신비적
상대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몇몇 단적인 예의 실험을 통하여 양 접근의(주로
묵시적인) 몇몇 추측들의 공식화를 추구할 뿐이다.
頓(돈)에 관한 하나의(그리고 확실히 유일하지는 않은!) 가능한 표상을
세우고자, 필자는 주로 선불교의 초기를 대표하는 두 가지 중국전적
안에 제기되어진 주제들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頓悟大乘正理決(돈오대승정리결)이다.
이는 8세기 후반 라싸에서 벌어진 중국과 인도불교의 수도자간에 일어난
돈오논쟁의 중국 측 자료이다.
두 번째는, 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론)이다. 이 경전은
앞의 [돈오대승정리결]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인용되고 있고, 아마도
한국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선의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서양적 관점의 참고자료로서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독일판
논문과 강론들을 택하였다.
여러분은 중국자료에는 친근할 것이라 생각되므로,
유형학적 모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다만 간략히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관한 몇 가지 배경을 언급하고자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1260년 독일 튀링겐에서 출생했다. 청년시절에,
그는 도미니크파의 수사가 되었고, 이후 그 위치가 급성장하여 34세의
나이에 이미 튀링겐의 주교대리가 되었다. 1300년에 그는 파리로 보내어져
그곳에서 2년간 강의를 하였다.
독일로 돌아와서 작센의 모든 도미니크파
수사들을 관할하였으며, 이후 보헤미아지방도 관장하였다. 50세에 파리로부터
두 번째(1311~1313) 강의요청을 받았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견되는
드문 영예인 것이다.
독일로 돌아온 이후 그는 슈트라스부르그의 도미니크
수도회 수장으로서, 그리고 남부독일 도미니크 수녀회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열성이었다. 이 지방에는 많은 수녀회가 있어서, 1300년경에는 이미
65개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에크하르트가
설교와 정신적 지도를 하느라고 아마도 상당히 바빴을 것이라는 점이다.
마이스터의 대부분 강론은 아마도 이러한 수도원들에서 수녀들이 받아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1326년, 가톨릭교회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 박해조치를
내리게 된다. 그는 1327년 교황에게 상소하였으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곧 죽게 된다. 그의 교리상 몇 가지 명제들은 마침내 1329년 교황 요한
22세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저술은 보통 언어상 라틴과 독일 계열로 구분된다.
라틴어로 쓰여진 에크하르트 주요작품의 몇 가지 단편인 [3부작]만이
현존한다. 여기에는 주로 다수의 성서주석, 설교, 강의 및 강론 초안들이
실려 있다.
이를 제외하면 다만 소수의 라틴어 강의와 설교들만이 현존해
있다. 라틴어로 쓰여진 저술은 그다지 알려지지도 읽히지도 않고 있다.
현존 문헌이 드문 것과 더불어 이러한 저술들의 전기적 순서는 종종
불명확하다.
왜냐하면 에크하르트는 종종 그의 주해를 정정하였기 때문이다.
라틴어 저술은 '인상적인 미완성작'이라 표현되며,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는 중요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에크하르트의 독일어 저술은 200가지 이상이 집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들의 신뢰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들
독일자료들은 통상 논문과 강론으로 구분된다. 이들 논문 가운데 네
가지는 진본으로 간주된다. 가장 저명한 에크하르트의 저술은 그의 [독일어
강론집]이다.
이 59가지 설교의 대부분은 이를 들은 청중들에 의해서
쓰여진 노트를 베끼고 다시 베껴 전수되었다. 에크하르트는 그의 강론
중 몇 가지가 도미니크 수녀회에서의 식사시간 동안에 읽혀지는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초기 편집본은 이미 사라졌다.
즉 최초기에 존재했던 문헌들은 14세기 중반경 편집되었는데, 일반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필자에 의한 설교자료로 채워져 있다. 편집자들은 에크하르트의
자료를 수집하는 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신비주의적 설교의 선집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 독일어 강론들의
대부분은 익명으로 전해졌으며, 단지 몇 세기 뒤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같은 특수한 인물의 것이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 자료의 전래는
이처럼, 에크하르트가 다른 사상과 더불어 다소 폭넓은 정신적 운동
가운데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익명으로 전하여지고 있는 14세기 초반의
다음과 같은 노래는 이러한 경향을 예증하고 있다. 그리고 頓에 관하여
규정된 표상으로 이끌어준다.
사막이여, 그 떡은
발길이 가로 닿은 적 없으며,
꾸며진 마음으로는
결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아직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으며,
그것은 멀고, 가까우며
그것은 낮고, 높으며
그것은 여여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것은 밝고, 맑으며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름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시작과 끝에 걸림없다.
움직여지지 않고 맨 몸으로
옷도 걸치지 않고 서서 있다.
누가 그것을 아는가
? 아는 자는 와서 말하라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어린이처럼 되라.
눈멀고 귀먹은 자가 되라!
그대 자신의 '나'를
부수어야만 한다
모든 '어떤 것'과 모든 '아닌 것'은 놓아버려야 한다!
공간을 놓아버려라, 시간을 놓아
버려라.
어떠한 표상이든 없애
버려라 !
걸어가라, 길도 없이
저 좁은 길을.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저 사막 안에서 그 자취를.
오 나의 영혼이여,
떠나거라, 신 가운데로 !
나의 모든 '어떤 것'은 함몰되어
신의 '無(무)' 속으로,
까닭없는 홍수 가운데로 함몰되라!
내가 그대를 떠난다면
그대는 내게로 온다.
내가 나 자신을 버린다면
나는 그대를 발견한다.
오 모든 존재를 넘어선 덕이여!
이와 같은 중세의 독일 시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신비주의'의
중심 주제 몇 가지가 요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돈'에 관한 우리의
표상에 길잡이 지도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노래가 가리키는 바는
형태가 없으며, 경계도 없고, 그리고 여기 저기와 멀리 가까이에 모두
있으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무엇이다. 사실상 존재가 아닌 (모든
존재를 넘어선)이 '그 무엇'은 종교적 길의 목적지로서 묘사된다.
위의
노래에서 밝힌 것처럼 '꾸며진 마음은 일찍이 도달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획득되어지겠는가 ? 그것은 단지 길없는 길을 걸음으로써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바로 '나'에 대한 추구를 없애고, 추구자가
당면한 '모든 것'을 (심지어는 '모든 無'까지도)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 놓아버림을 통하여, 그 어떤 '모든 존재를 넘어선 덕'을 발견한다.
이처럼 위의 노래는 최초의 기본적 문제에 대한 종교적 의문, 곧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과 목표를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신비적 상대주의'의 견고한 주창자들조차도, 위의 노래가
통상 '신비적'이라고 이름 붙은 지구상 다른 종교적 운동들에
기반한 논술들과 두드러지게 유사한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음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 쌍의 통 속에 쓸어넣는 대신에 (예컨대,
어떤 이는 '신비적'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른 이는 '非신비적'이라 하며,
또는 어떤 이는 '돈', 다른 이는 '점'이라고 부륻듯이),
다양한 화제에
관해서 여러 계층 또는 차원에서 일련의 척도로써, 다양한 종교적 현상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이 보다 유익할 것이다.
본고에서 관심 있는 것은,
이러한 천칭에 있어서의 한 끝, 다시 말해서 '돈'이라는 극단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이 용어는 이와 같은 종교 운동의 다양한 계층과 차원을
전달해 줌에 있어서, '신비주의'라든가 이와 유사한 개념들보다 더욱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해석학적으로 그 원천들과 종교적 배경을 묘사하는데는
아무런 요구도 주어지지 않는다. 즉 이 논문의 유형학적 취지가 요하는
것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풍자적인 접근이다. 이러한 풍자적
접근은 어떠한 중요한 특성을 강조해주는 반면에 기타 많은 점들을 무시한다.
2.
매개된 직관성
현대의 독일 철학자인 헬무쓰 플레스너는 인간 존재의 특이한 형태를
세 가지 주요개념으로서 특징지웠는데, 그것은 '자연적 인공성'과 '매개된
직관성', 그리고 '근거없는 뿌리성'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플레스너가,
종교에서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인류의 '풀리지 않는 모순' 또는 '절대적
역설'이라 부르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매개된 직관성(Vermittelte
Unmittelbarkeit)'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안과 밖에 의해서 동시적으로
특정지워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간은 그의 몸 (나는 나의 몸이면서
또한 나는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처럼 그것과는 다르다)이나
자신의 자아의식 (나는 인지하고 있음을 인지한다)과는 특수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안'쪽은 직관적 자기 동일성을 보는 반면에,
'바깥'쪽은 이와 같은 자기동일성 (식물이나 동물과는 다른)이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이나 타고난 매개로부터의 간격을 거쳐서 설립된다.
이 '매개된
직관성'은 고대 그리이스 사원에 쓰여진, '너 자신을 알라'는 훈계에
의해서 예증된다. 인간은 인지하는 주관과 인지되는 객관 양쪽이 됨으로써,
자신을 인식하고, 그리고
이러한 품성이야말로 칸트, 헤겔 그리고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라 불려오고 있는 것이다.
헤겔은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해서 더욱 폭넓은 암시를 주고 있다.
마음(Geitst)에 대한 지식은 가장 구체적이며, 그래서 가장 숭고하고
가장 어려운 지식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이 절대적 명령은, 스스로
혹은 역사적으로 단지 한 사람의 독특한 능력, 성격, 경향이나 약점
등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진실 그리고
그 자신 속, 혹은 그 자신을 향한 진실, 즉 마음 스스로의 본질(Wesen)을
아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이러한 '본질에 관한 지식' 혹은 본 논문상
용어인 '매개된 직관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헤겔의 단정을 강하게 부인하였다.
그가 깨달은 것은, 철학은 본질적으로 대상에 경계지워지고, 그림으로써
지식을 매개로 하여, 주관과 객관의 장벽을 결코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밝힐 수 있는 것은 기껏해 보아야 인간의 최상의
지식은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단박 깨침 속에서 이 최상의 지식에 도달한 신비주의자는 그가
발견한 것을 확신에 찬 말로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유신론이라는 이름하에 포섭되는 다른 종교적 경향들과 대조하여 신비주의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군중의 능력으로 설계된 유신론은, 우리 자신의 밖에 있는 궁극적
근원을 하나의 대상으로서 단정한다.
그러나 수피즘을 포함한 모든 신비주의는
그것을 다시 다양한 단계를 통과하여 우리 자신 속에서 주관으로서 발견한다.
이에 숙달한자는 결국 놀라움과 경이 속에 그 스스로가 이 궁극적 원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형태의 신비주의에 공통되는 이러한 과정은 독일
신비주의의 아버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신을
자신의 밖에서 찾지 말라'고 숙련된 達人에게 지시하는 형태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에크하르트의 정신적 딸에게서 상당히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녀는 (정신적) 장벽을 돌파한 연후에 기쁨 속에서 에크하르트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
"선생님, 함께 기뻐하십시오. 나는 신이 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외부 혹은 매개에 더욱 초점을 맞춘 종교적
성향과 직관성을 강조하는 성향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직관성은
궁극적 진리가 관찰자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는 데서 극에 달하게 된다.
1) 망상
앞서 인용한 독일 노래에서 말하는 '꾸며진 마음'이란 온갖 종류의
대상들에 맞닥뜨린 마음(주관)임을 추론할 수 있다. 그 노래에 있어서
마음의 대상들이란 '이것' 또는 '저것', '높은' 또는 '낮은', '먼' 또는
'가까운', '여기' 혹은 '저기'이다.
이러한 대상들은 보는 자를 보이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대상으로부터, 주관을 객관으로부터 분리하는 간격만큼이나
명료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의 일들을 기본적 인간 문제로 간주하는 것이
신비주의적이라 불리우는 운동의 통상적 모습이다.
그들이 단언하는
바 해답은, 결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며, 매개를 통하여 얻어질 수도
없는 바로 그것을 발견하는 것, 즉 '단박[頓]'에 있다는 것이다.
몇몇
주요한 기독교 신비주의자들(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은 이를 적당히 '非他者(비타자;non-other)'라고 불렀으며,
반면에 선의 전통에서는 '無心(무심)' 혹은 '無一物(무일물)'이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단박'이, 존재론적 그리고 구제론적
의미에서의 '매개'와 어떻게 관련되는가는 추후에 알아보기로 한다.
[돈오대승정리결]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사본은 폴 페리오가 4646
이라는
번호가 붙여진 돈황 석굴에서 발굴하였다. 이것은 '돈'의 연구에 흥미를
던져주는 자료이다. 어쨌든 이 제목을 해석하자면 '돈오'가 대승불교의
본질임을 시시하고 있다.
이 사본의 주창자는, 불교에서 제안하는 바
치료를 요하는 질병은 곧 '망상'이라는 견해를 거듭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본질은 '일체의 망상과 습기를 떠나는 것[離一切妄想習氣(이일체망상습기)]'이라
한다. [돈오대승정리결]의 중국측 주창자인 摩訶衍(마가연) 화상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다.
살아 있는 존재는 생과 사의 과정에 휩싸여 있어서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스스로가 삼독(탐·진·치와
같은 기본적 집착)에 얽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애초부터 지니고 있었던 망상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2절판 129b4-5).
이러한 진단에 뒷받침하여, 그는 한 문헌을 인증하여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모든 대상(다르마, 法)을 제거하여 '그것에 도달한 자'라고
불리운다. 그 대상들은 파악되어질 수 없는 그의 마음의 객관화된 현상인
것이다(2절판 129b6).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돈오대승정리결]에 내려진 진단은 어떤 특수
집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과 시간, 공간을 불문하고 적용된다는
점이다. 즉 '모든 존재는 삼독으로 인한 망상의 습기로 철저히 묶여져
있다(2절판 146b23)'는 것이다.
불교의 역할은 이처럼 모든 중생들이
당하는 고통을 제거하는 관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이러한 망상을 제거하는 것(2절판 133b5)'이라고 중국측 대표자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想(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에, '상이란
마음에 상념이 일어나 움직여 외부의 대상을 취하는 것(2절판 133b6)'이라고
답한다.
이 문제는 이곳과 그리고 다른 곳의 구절에서 정의된 것처럼,
통상적인 인간존재와 그 갖가지 발현을 특징짓는 기본적 주·객관의
단절을, 이중성의 맥락에서 보여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반면에, [능가경]에서의
인용에서는 無心(무심)이 보이고 있다.
진정한 진리의 문은 私有(사유;주관)함과 私有(객관)됨의 이중성에서 저만큼
벗어나 있다(2절판 131[bis]b1).
객관에 대립하는 주관의 이분법 혹은 이중성은, 사고와 행동을 분별하여
그들을 私有化(사유화)하고, 그것들을 붙잡고 집착한다는 것은 '단박'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반대뇌는 것이다. 이 '단박'은, '이 여여한 이치는 일체를
갖춘다[此如如之理具一切(차여여지리구일체)]'라고 묘사된다.
그것은 다만 온갖 망상과
집착을 결정적으로 억제함으로써만 도달된다. 스즈끼 다이세쯔는
이러한 진단을 보다 현대적으로, 하지만 본질에 있어서 전혀 어긋남이
없이 공식화하였다.
불교에 의하면 A와 非A라는 상반된 명제는 존재의 궁극적 진리에
관한 무진에 바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는 바로 차별이다. 차별한다는
것은 생과 사의 소용돌이에 잠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잠기게 되는 한 해방이란 없으며, 열반의 성취나 불성의 체득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로 화제를 돌리자. 그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자신이 기술하는 문제는 일부 사람만이 지니고 있거나 혹은
여타의 사람들은 지니고 있지 않은 문화, 교육 혹은 종교적 신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사물과의
그릇된 관계'라는 바로 그 현실이다.
우리는 인간이 이것을 떠나 저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 장소, 이 사람들 그리고 이 방법 혹은 이러한 요지 혹은
이러한 행위등이 그렇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이러한 방법 혹은 사물들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들과 그릇된 관계에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는 강론에서 이를 자주 언급한다. '우리는 바로 자신의
갖가지 장애의 원인이다(강론5, 177).' 그렇다면 이것의 뿌리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묻는다. 지옥 속에서 불타는 것이 무엇이냐고. 일반적으로
사도들은 말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라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진리에
따르건대, 지옥 가운데에서 불타는 것은 바로 '아님[非]'이라고(강론6,
179).
같은 강론에서 그는 설명한다. "당신은 '아님'에 빠져 있는
만큼 불완전하다. 만일 당신이 완전해지고자 한다면, 당신은 '아님'에서
벗어나야 한다(강론6, 179)."
에크하르트는 앞서 스즈끼의 설명을
연상케 하는 방법으로 이 '아님'을 설명한다. "모든 창조물은 스스로
부정해 나간다. 하나는 다른 것임을 부인한다(강론 22, 253)." 바로
이 '아님'이야말로 모든 이중성과 분별의 뿌리이며 인간 고통의 근원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이 있는 곳에 결핍이 있다. 왜 인가? 하나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아님은 차별을 낳으며, 고통 이상의 아무런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단지 불화만이 있을 뿐(강론50, 389).
이것과 저것이 존재하는 영역에는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다(강론
12, 209). 그리고 불편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중성
· 다중성
그리고 매개의 영역이며, 거기서 영혼은 가엾게도 수많은 대상을 움켜쥐고
결국에는 상실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기독교에서 중시하는
죄의 개념조차도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죄는 항상 하나에서
다수로의 퇴보인 것이다'. 물론 인간의 매개된 직관 안에서, 인간은 바깥쪽으로 대상을 私有하려는
시도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가 구조적으로 자신에게 대상이 되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어떠한 개념표현에 놓여 있는 매개된 주·객관
관계성으로서의 인간의 통상적 상념을 분석한 연후에, 인간은 주관으로서(객관으로서도
또한) 스스로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람이 이러한 (매개된) 방법으로 형상 혹은 표현을 듣는다면, 감관을
통하지 않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 결과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한 수도자는 말한다. 마음은 스스로의
개념을 만들어 내거나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이처럼 마음은 감관을 통한
어떠한 표현으로도 그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은
다른 것은 모두 알아도 자신은 모른다. 마음이 그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매개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내부에서 마음은 모든 매개 개념작용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신이 온갖 개념작용이나 자신에 비견되는
것에서 벗어나 있는 이유인 것이다(강론57, 47-418).
자신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과 욕구야말로 일반적으로 종교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신비적인 경향의 가르침은
이러한 질문과 목표점에의 직관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가르침의
취지는 일본의 선승인 道元(도원)에 의해서 역설되고 있다.
불도를 배우는 것은 자신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잊는 것이다. 자신을 잊는 것은 모든 사물이 저절로 명확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저절로 명확해지는 것은 자신도 타인도 해탈시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이를 '신약성서'의 언어로 이끌어 들인다.
신은 말씀하셨다. "나의 사도가 되고자 하는 자는 우선 자기
자신을 놓아버려야 한다(Lucas 9, 23)."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고는
그 누구도 나의 말과 교훈을 알아들을 수 없다(강론11, 207).
2)
나와 나 아님
[돈오대승정리결]은 다음과 같이 돈점에 관한 진단을 마무리하고
있다. '삼독, 고통, 그리고 망상의 뿌리는 모두 반영된 사고의 개별화에서
비롯한 轉移(전이)에 있다(folio 146b2-3).' 가장 기본적 차별은-즉 인간의
자의식에 기반한-나와 나 아님과의 분별이다.
인간의 가장 즉시적이고
기본적인 차별에 대해서는 종교문헌 곳곳에서 그 표현을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의 타락에 대한 성서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신비적'
종교운동의 초점이 이러한 차별에 커다란 강조를 두고 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예컨대 [돈오대승정리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와 나 아님의 근본을 찾지 않고 언어에 집착하는 자는 이중성에
빠져 자신과 남들을 망친다(folio 142b6).
또한 독일의 고전인 [독일신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임, 자신임, 나의 것, 나 등. 이 모두는 악의 정신에 속한다. 그리고
정신은 이로 인하여 악한 것이다. 보라, 다음의 몇 마디는 이 모두를
말한다. 순수하라, 그리고 전적으로 너 자신을 없애라!
이와 유사하게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만일 우리가 아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불순하지 않을
것이다(강론5, 176).
그렇지만 이러한 '아님'의 자유는 '나'아 '나 아님'의 표현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좀 다르면서 더욱 어려운 것을 말하고자 한다. 만일 누구든
단박에 있는 그대로의 하나 그리고 한꺼풀인 자연에 서고 싶다면, 그는
인간의 모든 차별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그가 한번도 본
적 없는 바다 건너 사는 사람에게도 마치 함께 있는 사람이나 절친한
친구에게와 마찬가지로 호의를 품게 될 것이다.
당신이 당신 측근의
사람을 당신이 결코 본 적 없는 사람들보다 더욱 좋아하는 한 당신은
결코 편치 않다. 그리고 단번에 이 순일한 세계를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당신은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마음만 순수하다면,
모든 꾸며진 대상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세 번째로, 당신은 '아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실로 말하노니, 그대가 '아님'에 집착하는 만큼 그대는
불완전하다. 따라서 완전하고자 한다면 '아님'이 제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강론6, 179).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하나가 다른 것이 아닌'한, 결핍이 있으며, 따라서 고통과 불안이
있다고(강론50, 389).
그리고 그가 '아집과 무지'로서 동일시하는 주요 장애물은 모두 '저것'이
아닌 '이것'과 '객관'이 아닌 '주관' 그리고 '나 아님'을 떠난 '나'에게
기초되어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이간의 기본적인 나와 나 아님의 분별을 무지와
고통의 가장 근본적 원천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두 가지 경우를
인용하고자 한다. 첫째는 일본의 선승인 盤珪(반규;
1622~1693)이며, 둘째는
현대 인도의 스승인 라마나 마하리쉬이다.
그대의 자기 편애는 그대의 모든 편견의 뿌리이다. 그대가 자신을
편애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편견도 없게 될 것이다.
보라, 모든 '나 아님'을 없앤 자는 '나'를 없앨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라든가 '나는 저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말할
'나'가 있어야 한다. 이 '나'는 다만 에고이며, 또한 '나'라는 생각이다.
이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후에 모든 다른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생각이야말로 근본생각인 것이다. 그 뿌리가 뽑히면, 나머지
모두는 동시에 뽑힌다. 그러므로 뿌리인 '나'를 찾아라. 너 자신에게
물으라. '나는 누구인가?'라고. '나'의 원천을 찾으라.
무지는 장애이다.
이를 제거하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무지는 '나'라는 생각과 일치한다.
그 원천을 살펴보라. 그러면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앞서 인용한 게송 [Granum sinapis]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설하고 있다.
그대의 '나'는 부수어져야 한다. '모든 존재를 넘어선 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모든 '어떤 것'과 모든 '아닌 것'은 사라져야 한다.
에크하르트는 이러한 주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물 가운데에서 그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그대 자신이다.
왜냐하면 사물과 그릇된 관계에 있는 것은 바로 그대이므로. 그러므로
그대 자신에서 시작하고, 그대 자신을 놓아버려라. 진실로 그대가 자신을
없애지 않는다면, 그대는 피하는 곳마다 단지 장애와 불안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밖의 것 - 장소, 방법, 사람 또는 일, 유형, 빈곤
혹은 굴욕 - 에서 평화를 찾는다. 그것이 얼마나 인상적이든, 그리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며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찾는 자는 잘못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그들이 찾는 것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들은 길을 잃은 자 처럼
찾는다. 그래서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선
그 자신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사실상 어떤 사람이 자신의 왕국과 온 세상을 포기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 얽매여 있다면 그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을 놓아버린다면 그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이다(Reden der Unterweisung,
55~56).
이러한 '놓아버림'의 주제는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중점이 된다.
그러나
어떻게 놓아버리는가? 이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말은 道元(도원)이나 라마나
마하리쉬와 공명되는 바가 있다.
자신을 살피라. 그리고 그대 자신을 발견하는 곳, 바로 그곳에서
당신 자신을 놓아버리라. 이것이 바로 최선이다.
3.
단박에 꿰뚫음-無媒介(무매개)
종교가 갖는 일체의 본질과 역할이 천명되는 것은, 탈 것 혹은 매개로서
묘사될 때이다.
이러한 탈 것 혹은 매개는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끌어 준다. 즉 전도된 망상에서 깨우친 진리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
고통으로부터 축복으로, 이중성에서 비이중성으로 등인 것인 것이다.
[돈오대승정리결]의 서두에서, 인도측은 질문한다. "'大乘[대승;
큰 탈것]'이란
무엇인가?" 중국측의 대답은 단박을 강조하는 종교운동에 있어서
전형적이다.
탈 것도 없고 운반되어질 것도 없는 것
어떠한 乘의 틀에서도 벗어나 있는 것
그것을 대승이라 부른다
(folio 129b1).
다른 대답에서, 중국측 응답자는 또 이렇게 읊고 있다. "수행하지
않음이 모든 수행을 닦는 것이다(folio 131[bis] b4)." [돈오대승정리결]은
이토록 역설적인 대답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효과적으로 단지
해답 그 자체만이 진정한 닦음이라는 것을 시술하고 있다.
즉 단 하나의
가능한 길 혹은 방도는 어떠한 길 혹은 매개도 없는 것(무매개) 뿐이다.
해답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떠한 매개 혹은 점진적 접근은 아직도 철저히
전도된 망상의 영역 가운데 있는 것으로 판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붓다가
頓門(돈문)보다는 오히려 漸門(점문)을 가르쳤다고 하는 인도측 도전은, 이러한 '점'
혹은 '돈'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전도된 망상의 영역에 속하며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 논거에 의하여 지체없이 논박되고
있다(folio 132b-133b).
다시 인도측에서 초보 수행자에게 想이란 필요하거나
유익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중국측에서는 바로 이러한 이중적 想(상)이야말로
문제이며, 이를 제거하는 것이 곧 해답임을 강조하고 있다(folio 134b-135a).
그렇다면 어떠한 수단을 써서 전도된 망상과 대상애의 집착을 없애는가.
하고 인도측이 묻자, 다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답하고 있다.
전도된 망상이 일어나는 한, 깨칠 수 없으며, '생과 사'라 불리우는
것 속에서 남아있게 된다.
깨쳤을 때, 그에게는 더 이상 전도된 상념에
틀지운 행동이나 대상에 대한 私有(사유)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거나 의존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모든 생각이
궁극적으로 자유로우며 지혜로운 것이다(folio 135b3-5).
이러한 양상은 또한 구체적인 수행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는데 있어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看心(간심)의 의미를 묻는데 대하여 維摩經(유마경)에서의
다음과 같은 인용으로서 답변을 맺고 있는 것이다.
'觀(관)하지 않는 것이
보리이다[不觀是菩提(불관시보리)].' 해탈로 이끄는 수행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고
답변되어진다. 간단히 말해서, 목적지를 향한 어떠한 노력도 단지 하나의
문제를 표출시킬 따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이중성과
차별의 영역 안에서 매개가 있으며, 수행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매개는 그 자체로서 문제의 표출인 것이다. 단지 모든 전도망상 (그리고
모든 매개나 노력도 마찬가지로)의 철저한 단절만이 비로소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태도는 선 전통에 있어서의 여러 텍스트에 나타난다.
예컨대, 다음의 石頭에 관한 이야기를 보자.
藥山(약산)선사가 처음으로 석두를 만났을 때 물었다.
"저는 삼승 십이분교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방의 종지를 듣자니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저는 이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석두가 말했다.
"이 방법도 쓰지 않고 저 방법도 쓰지 않는다. 이 방법과 저
방법을 모두 쓰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석두선사의 첫부분 대답은 라싸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된 중국측
주장을 아주 간결하게 나타내준다.
즉 (돈과 점을 포함한) 어떠한 특별한
방법도 쓰지 않는 것이다. 일찍이 라싸에서의 논쟁 또한, 마조가 대중들에게
요구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행해져야 할 것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신념을
입증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의 선 사상가의 말로 이루어지는 논의로써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불교의 기본적 방식은, 에고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깨치는
것 이외에 참 나를 깨치는 그 어떠한 방식도 불가능함을 인식케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에 에고가 추구하거나 달라붙을 그 어떠한 '방식'이라도
있다고 하면, 그 방식은 에고의 영속에 기여할 따릉미며, 따라서 그러한
것은 오히려 장애가 되고, 심지어는 해악을 끼쳐서 목적지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벽은 질책한다. '네가 그 어떠한 수단에 관심을
갖는 한, 너는 항상 그릇된 매개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선의 방식은 결국 모든 방식을 벗어버리고, 스스로 어떠한 '방식'도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급진성은 아마도 극단적 '직관'의 형태로서, 실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예컨대 마하연선사는 [돈오대승정리결]의 특히
세 번째 기록과 그 문서의 끝에 있는 요약부분에서 자신의 급진적 주장을
아주 쉽게 뒤집고 있다.
비록 그의 개방된 '점진적' 주장이, 부분적으로
方便(방편)과 (단지 뒤바뀜을 돕고자 사용되는 진리의 표현으로서의) 二諦說(이체설)의
덮개 아래로 치우쳐 있으며, 그리고 표면상 선한 행위와 고결함 등에
관심있는 君主(군주)를 놀라게 하지 않고자 하는 충동에 이끌려 있다고 하더라도,
몇몇 모순은 부인될 수 없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이 나타난다. 그가 한 몇 가지 급진적 주장은 선사들의 것과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것으로 전수되는 자료들 또한 보다
상투적인 기독교의 풍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가톨릭 교회가 권장하는
기도 및 기타 수행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이 논문의 목적이 에크하르트에 대한 포괄적 묘사나 선과
에크하르트의 비교에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에크하르트와 중국의 인용문헌
모두에 나타나는 '단박' 그리고 급진적 측면에 중점을 두어 논의를 지속하고자
한다.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신은 분별과 이중성 안에서는 발견될 수 없다.
그리고 남이 아닌 그곳을 향하여 갈 수 있는 그 어떠한 길이나 매개도
없다.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신을 보고자 하는 자는 모두가 '방법'을
택하며, 그 방법 속에 감추어져 있는 신을 놓치고 만다 (강론6, 180).
"결과적으로, 단지 "방법이 없이 신을 찾는 자만이 그자신 속에서의
신을 파악한다 (강론6, 180)." 그러나 방법이나 방식이 없이 신을
파악한다는 것은 완전히 '신'을 찾고 있는 '나'의 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聖(성)바울은 말한다. "신은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빛 가운데
살고 깃들인다." 그러한 빛으로의 통로는 없으며, 다만 도달만이
있을 뿐이다.
모세는 말한다. "그 누구도 신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인간이며, 인간이라는 생각이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는
접근하고자 하며 결국 신을 보지 못할 것이다 (강론53, 402).
앞서 인용한 게송 [Granum sinapis]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가리키는
바가 있다.
그대 자신의 '나'를 부수어야만 한다.
모든 '어떤 것'과 모든 '아닌 것'을 놓아버려야 한다!
공간을 놓아버려라, 시간을 놓아 버려라.
어떠한 표상이든 없애
버려라!
걸어가라, 길도 없이. 저 좁은 길을.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저 사막안에서 그 자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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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놓아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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