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신륵사 神勒寺' 소개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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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륵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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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전)

신륵사 조사당_보물 제180호 / _[적묵당↑]

신륵사는 봉미산(鳳尾山) 기슭에 자리잡은 신라 시대에 건립된 유서 깊은 고찰이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 말의 고승 나옹이 이 절에서 갖가지 이적을 보이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이 절도 크게 위축되었으나 예종 1년(1469)에 제4대 세종과 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의 능인 영릉(英陵)이 여주로 옮겨진 후,
영릉의 원찰(願刹)이 되어 성종 3년(1472)부터 대규모로 다시 지어졌으며 조사당은 이때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륵사의 조사당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중앙에 나옹, 좌우에 지공과 무학의 영정이 있다.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로
장대석 기단에 다듬은 초석을 놓아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되는 재료인 공포를 사용한 다포계 건물이다. 지붕기구는 오량으로 구성하였는데, 대들보 위에 가로재가 정(井)자형으로 놓이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도록 한 특수한 구조이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우물천장을 하였으며 뒷벽 쪽으로 불단을 설치하여 지공 나옹 무학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신륵사 조사당은 작은 규모이지만 공포의 형태와 가구수법이 특이하고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외관을 가지고 있는 조선 초기의 중요한 건축이다.[안내문]

조사당

조사당 옆 뒤쪽으로 난 계단
보제존자 석종 비 석등으로 오르는 곳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_ 보물 제 229호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이 비는 고려 말의 승려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眞堂)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이다. 나옹이 말년에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이 절 북쪽 언덕에 종 모양의 부도를 세워 그의 사리를 안치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초상을 모실 전당을 짓는 등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비문은 이색(李穡)과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짓고 썼는데 단정한 필치가 돋보인다. 뒷면에는 건립에 참여한 제자와 시주자의 명단,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연꽃 무뉘를 새긴 비좌를 얹어 비몸을 세웠으며 비몸 양 옆에 기둥을 세운 뒤 그 위에 지붕 모양으로 된 개석(蓋石)을 얹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말기에 새로이 유행한 석비 형식으로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도 같은 형식이다.

♣ 보제존자 석종 _ 보물 제 228호

이 석종은 고려 말기의 승려 나옹(懶翁 1320~1376)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부도(浮屠)이다. 공민왕의 왕사였던 승려 나옹이 고려 우왕 2년(1376)

경기도 양주 화암사에서 경상남도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이 절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 제자들이 우왕 5년 절을 크게 다시 짓고 절 뒤의 좋은 자리를 택해 부도를 마련하였다.

석종

부도의 기단 위에 돌을 깔고 기단의 앞면과 양쪽 면에 2단의 계단을 설치하였는데, 계단에 문양을 새겨 변화를 주고 있다. 그 위에 모셔진 이 석종의 모양은 완만한 타원형을 이루다가 어깨부분에서 수평으로 되었으며 맨 꼭대기에는 보주(寶珠)를 조각하였다. 종모양의 부도는 통도사, 금산사, 용연사, 봉암사 등에서 볼 수 있다.

부도 뒷면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비(보물229호)의 내용으로 이 석종이 만들어진 시기를 고려 우왕 5년(1379)으로 추정하고 있다.

♣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 _ 보물 제 231호
부도를 밝히기 위한 등으로, 화강석의 평면 팔각형의 구도를 지닌 석등으로 등불을 앉히는 화사석은 납석(곱돌)을 사용하고 있다. 높다란 팔각형의 지대석 위에 놓인 기단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고 하대석에는 연꽃무뉘가 새겨져 있다. 간주석(竿柱石)에는

석등

연주문(蓮珠紋)으로 구획을 나눈 후 그 안에 亞자형의 안상(眼象)을 배치했으며, 상대석에도 하대석과 마찬가지로 연꽃을 새겼다.

납석으로 된 화사석은 높게 만들어졌는데, 반룡문(蟠龍文)을 새긴 원형 기둥과 화창(火窓), 비천(飛天), 창방(昌枋), 평방(平枋) 등을 가득 조각하였다.

팔각형인 지붕돌의 추녀 끝은 살짝 들어올려졌고 지붕돌 위에는 복발(覆鉢)과 보주를 놓아 상륜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 석등은 나옹이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난 뒤 부도를 세웠던

고려 우왕 5년(1379)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고려 후기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의 무덤 앞에 놓이는 장명등(長明燈)의 선구적인 예로 평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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