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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주
(春晝) ♣
♧ ♣
1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2
봄 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꾸기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비바람 ♣
♧ ♣
밤에 온 비 바람은
구슬 같은 꽃수풀을
가엾이도 지쳐 놓았다.
꽃이
피는 대로 핀들
봄이 몇 날이나 되랴마는
봄은
무슨 마음이냐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면
바람 불고 비 올데가 없더냐.
반달과
소녀 ♣
♧ ♣
옛 버들의 새 가지에
흔들려 비치는
부서진 빛은
구름 사이의 반달이었다.
뜰에서
놀던 어여쁜 소녀는
'저게 내 빗이야' 하고 소리쳤다.
발꿈치를
제켜 디디고 고사리 같은 손을
힘있게 들어
반달을 따려고 강장강장
뛰었다.
따려다
따지 못하고
눈을 힐낏 흘기며 손을 돌리어
무릇 각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장자장' 하더라.
코스모스 ♧
♣ ♧
가벼운 가을 바람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꽃잎이 날개냐
날개가 꽃잎이냐
아마도
너의 혼은 호접(蝴蝶)인가 하노라.
우리님 ♧
♣ ♧
대실로 비단 짜고,
솔잎으로 바늘삼아
만고
청청
수를 놓아 옷을 지어 놓았다가
어즈버
해 차거든 우리님께 드리리라.
추야단
(秋夜短) ♧
♣ ♧
가을밤 길다 하기에
잠긴 회포 풀자 했더니
첫
굽이도 못 찾아서 새벽빛이 새로와라.
그럴줄
알았더라면 더 감지나 말 것을 · · ·
사랑 ♣
♧ ♣
봄 물보다 깊으리라
가을
산보다 높으리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 하리.
구원
(久遠) ♣
♧ ♣ [Back◁이전위치]
내가 없으면 다른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것이 없으면 나도 없다.
나와
다른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으면
나와 다른 것을 아는 것도 없다.
나는
다른 것의 모음이요,
다른 것은 나의 흩어짐이다.
나와
다른 것을 아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갈꽃
위의 달빛 이요
달 아래의 갈꽃 이다.
